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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원탁-평등한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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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2-16 16:44 조회19,4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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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가족에게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그의 집 식당에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원탁이 놓여 있었다. 원형 식탁에는 둥근 식기들이 잘 어울린다. 가지런히 배열된 원형 접시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조용히 식탁에 앉는다.

원탁은 좌우와 위아래가 없다. 가로와 세로도 없다. 원탁의 본질은 식탁에 앉으면 바로 드러난다. 원탁에 앉는 순간 `주인`과 `손님` 간 구별은 지워진다. 원탁 자리 배치는 어디로 보나 동일하다. 상석과 말석 자리 구분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모서리가 없으므로 좌석의 중심이라 할 만한 자리도 없다. `좌장(座長)`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 배치가 지닌 의미에도 유사한 효과가 빚어진다. 원형 식탁에는 이렇다 할 음식 방향이라 할 만한 게 없다. `상석`에 가까이 놓인 음식, 왼편과 오른편을 구별하여 놓은 음식이란 게 없다. 이 무심한 배치의 의미는 `직사각형 제사상` 음식 배치와 비교하면 뚜렷하다. 제사상에 오른 음식에는 서열과 방향이 있다. 위아래 왼편 오른편에 따라 할아버지 밥과 할머니 밥에 순서가 있으며, 고조할아버지 밥과 증조할아버지 밥에 서열이 있다. 빨간 과일과 하얀 과일이 놓이는 방향이 다르며, 육지 음식과 바다 음식 사이에도 위계가 있다. 제사상에서는 음식 위치가 곧 그 음식의 `(사회적)의미`다. `격식 있는` 전통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제사상을 물리고서 남자가 `먼저` 식사한 `후에` 여자가 식사했다. 둥근 식탁은 방향과 위계와 서열이 없는 테이블이다. 평등한 식탁이다.


그러나 사실 저녁 식탁에 앉은 모든 인간은 하루의 노동에 지치고 일용할 양식을 마주한 허기진 인간일 뿐이지 않은가.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다. 그의 식탁에는 교황과 평신부, 사제와 신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의 자리 구별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 일반인과 범죄자의 구별조차 없었다. 그는 `메시아 예수`가 바로 이 `평등한 식탁`에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했음을 올해 내내 세계에 상기시켰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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