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총장추천제를 유보한다니 고언하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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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2-03 16:31 조회19,6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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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총장 추천제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전면 유보했다. 삼성으로서는 역풍을 감지하고 신속하게 사태를 수습해나간 것이지만 자존심은 좀 상했을 것이다. 그 흔적이 “철회”가 아니라 “유보”라는 단어 선택에서 엿보인다. 이번 사건이 삼성의 사악한 ‘의도’에서만 비롯되었다고 생각진 않는다. 강자들이 항용 그렇듯이 삼성은 그저 타자에게 무신경하고 오만하며 자기 행동의 귀결에 대해 무지했을 뿐이다.
삼성이 총장 추천제를 꺼낸 이유는 채용 과정을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써먹은 “열린 채용”의 후과에 직면해서일 것이다. 삼성직무적성시험(SSAT) 응시자가 20만명이니 서류심사로 거른다 해도 시험 관리가 큰 문제다. 게다가 세칭 명문대 이공계 학생들은 시험을 대충 봐도 합격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공식 경쟁률보다 훨씬 더 바늘구멍이라는 소문마저 파다하다. 이리저리 시험을 굴려 봐도 합격자들의 대학별 비율에는 어차피 큰 변화가 없다는 내부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출구전략이 필요했을 텐데, 그럴 때 평소 습관이 뱀처럼 고개를 드는 법이다.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서비스에 하듯이 채용 과정을 대학으로 외주화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 대학 총장과 교수들은 이런 외주화에 저항하기 힘들 것이다, 추천권 부여를 대학 총장과 교수에게 권한이나 특혜를 주는 것인 양 포장할 수 있다, 는 생각이 주르륵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발상의 후과는 멀고 깊었다. 대학별 추천 인원이 곧장 대학 평가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런 평가는 폭력일 뿐이다. 삼성 내부 수요 이외에 아무런 합리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성차별과 지역차별의 낌새가 풍기는 삼성의 기업 문화였다.
그래도 이 폭력적인 제안을 총장들이 거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 대학 출신 삼성 직원, 삼성 취업을 희망하는 재학생, 입시생을 둔 학부모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속에서 추천제가 수용되었다면 벌어졌을 풍경은 끔찍하다. 총장은 학과장들의 추천을 모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러면 대학 안에서 다시 할당의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해당 대학 학과 수에도 못 미치는 인원을 할당받았는데, 어떻게 인원 배분을 조정할 것인가? 교무회의는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추천을 해도 삼성은 그저 서류심사를 면제해줄 뿐이었는데, 그 또한 굴욕적인 것이다. 추천 학생의 합격률이 낮으면, 그 대학은 추천 능력을 의심받고, 총장은 학과장들의 추천 능력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때 총장과 교수들은 삼성을 올려다보며 삼성의 욕망을 헤아리게 됐을 텐데, 그렇게 강자가 원하는 바를 해독하는 것에 내 실존이 걸린 상황이야말로 최악의 굴욕이고 지배의 관철이다.
대중의 분노로 인해 삼성이 총장 추천제를 유보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이왕 철회가 아니고 유보인 바에야 새로운 추천제를 마련해 왔으면 한다. 이번에 삼성은 삼성 직원의 출신대학 비율을 추천 인원 할당에 고려했다. 거꾸로 가보기 바란다. 삼성의 인사시스템을 고수하면 삼성이 계속 순항할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하지 않는다면, 삼성 인사시스템 자체에 고유한 편견이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전체 채용 인원의 절반쯤은 삼성 직원의 출신대학 비율에 반비례로 추천 인원을 할당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삼성 직원을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의 총장이 추천한 인재는 그냥 합격시켜주는 특혜도 줘보기 바란다. 인재는 그런 역발상 속에서 새롭게 발굴될 수도 있으며, 그럴 때 옴니아폰마저 사주며 삼성의 오늘을 있게 한 국민들을 조금은 기쁘게 해줄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4. 1. 28.)
삼성이 총장 추천제를 꺼낸 이유는 채용 과정을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써먹은 “열린 채용”의 후과에 직면해서일 것이다. 삼성직무적성시험(SSAT) 응시자가 20만명이니 서류심사로 거른다 해도 시험 관리가 큰 문제다. 게다가 세칭 명문대 이공계 학생들은 시험을 대충 봐도 합격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공식 경쟁률보다 훨씬 더 바늘구멍이라는 소문마저 파다하다. 이리저리 시험을 굴려 봐도 합격자들의 대학별 비율에는 어차피 큰 변화가 없다는 내부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출구전략이 필요했을 텐데, 그럴 때 평소 습관이 뱀처럼 고개를 드는 법이다.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서비스에 하듯이 채용 과정을 대학으로 외주화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 대학 총장과 교수들은 이런 외주화에 저항하기 힘들 것이다, 추천권 부여를 대학 총장과 교수에게 권한이나 특혜를 주는 것인 양 포장할 수 있다, 는 생각이 주르륵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발상의 후과는 멀고 깊었다. 대학별 추천 인원이 곧장 대학 평가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런 평가는 폭력일 뿐이다. 삼성 내부 수요 이외에 아무런 합리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성차별과 지역차별의 낌새가 풍기는 삼성의 기업 문화였다.
그래도 이 폭력적인 제안을 총장들이 거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 대학 출신 삼성 직원, 삼성 취업을 희망하는 재학생, 입시생을 둔 학부모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속에서 추천제가 수용되었다면 벌어졌을 풍경은 끔찍하다. 총장은 학과장들의 추천을 모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러면 대학 안에서 다시 할당의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해당 대학 학과 수에도 못 미치는 인원을 할당받았는데, 어떻게 인원 배분을 조정할 것인가? 교무회의는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추천을 해도 삼성은 그저 서류심사를 면제해줄 뿐이었는데, 그 또한 굴욕적인 것이다. 추천 학생의 합격률이 낮으면, 그 대학은 추천 능력을 의심받고, 총장은 학과장들의 추천 능력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때 총장과 교수들은 삼성을 올려다보며 삼성의 욕망을 헤아리게 됐을 텐데, 그렇게 강자가 원하는 바를 해독하는 것에 내 실존이 걸린 상황이야말로 최악의 굴욕이고 지배의 관철이다.
대중의 분노로 인해 삼성이 총장 추천제를 유보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이왕 철회가 아니고 유보인 바에야 새로운 추천제를 마련해 왔으면 한다. 이번에 삼성은 삼성 직원의 출신대학 비율을 추천 인원 할당에 고려했다. 거꾸로 가보기 바란다. 삼성의 인사시스템을 고수하면 삼성이 계속 순항할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하지 않는다면, 삼성 인사시스템 자체에 고유한 편견이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전체 채용 인원의 절반쯤은 삼성 직원의 출신대학 비율에 반비례로 추천 인원을 할당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삼성 직원을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의 총장이 추천한 인재는 그냥 합격시켜주는 특혜도 줘보기 바란다. 인재는 그런 역발상 속에서 새롭게 발굴될 수도 있으며, 그럴 때 옴니아폰마저 사주며 삼성의 오늘을 있게 한 국민들을 조금은 기쁘게 해줄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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