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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안철수의 ‘중도보수 신당’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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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9-23 14:21 조회20,7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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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을 준비하고 있는 이른바 ‘안철수 세력’의 안정적 지지 그룹은 대체로 중도보수층에 형성돼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대선 승리를 목표로 삼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선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게다. 그들이 중도진보층으로부터의 지지도 최대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잘만하면 민주당도 ‘접수’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실재했을 것이다. ‘십고초려’ 끝에 최장집 교수를 영입한 것도 그 노력의 일환이었음은 물론일 게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들에겐 불행한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모신 한국정치학의 당대 최고 석학은 사실상 안철수 세력이 중도진보층을 대표하긴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많은 이들이 석학의 그 판단을 신뢰하고 공감하고 있다. 안철수 세력이 중도진보층의 지지를 확보하기는 앞으론 더 어려울 듯싶다.



한국의 정치 발전과 사회 진보를 위해서는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안철수 세력이 기존의 양대 정당 사이에서 표류하거나 다른 대안이 없는 까닭에 그중 어느 한 정당에 표를 던져왔던 중도보수 성향의 중산층 시민들을 집중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해 내 제3의 유력 정당으로 부상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대표성의 제고와 복지국가로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가 되는 일일 것이다. 우선 그것은 민주당으로 하여금 확실한 중도진보 노선을 걷도록 강제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자기의 오른편에서 떠오르며 강하게 압박해오는 안철수 신당과의 차별화를 위해선 민주당이 보다 왼쪽으로 가야 할 필요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그러한 변화는 다시 진보정당들의 각성과 심기일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선, 상당 규모의 중도 혹은 합리적 보수세력을 수구보수가 주도하는 새누리당에서 분리해냄으로써 보수의 건설적 분열도 촉진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정당체제가 진보-중도진보-중도보수-보수의 사분할 체제로 재구성된다면 대의제 민주주의 발전의 전제 조건인 사회경제적 집단들의 정치적 대표성은 크게 신장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장기적으론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복지국가 강화 작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필자는 지난 칼럼(2013년 8월16일자)에서 아이버슨과 소스키스의 연구를 소개하며 왜 양당제 국가에서는 복지 확대에 인색하기 마련인 보수파 정부가 지배적인지를 설명했다. 중산층 시민들이 진보파 정당의 ‘집권 후 좌경화’를 우려하여 보수파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진보파 정부가 들어서면 복지국가 기조를 급격히 강화해 자신들에게 과도한 세 부담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 우려의 핵심이다.


그러나 중산층 시민들의 다수는 복지국가 건설에 찬성한다. 다만 그것이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요컨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우선되고 뒤이어 자신들에 대한 복지 과세가 점차 증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한편 그들은 진보파와 보수파로 나눠진 양당제에선 자신들의 이 선호가 관철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진보파 정부는 세 부담을 급격히 늘릴 가능성이 크고, 보수파 정부는 복지국가 건설에 무심할 공산이 크다. 상황이 어차피 그러하다면 당장의 손해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들이 보수파 정당에 표를 던지고 마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분할 체제 등의 다당제 하에서 자신들의 선호를 대표하는 유력한 중도보수 정당을 가질 수 있다면 셈법은 달라진다. 그들은 필경 자기 정당이 보수 정당보다는 중도진보 및 진보 정당들과 협력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등의 중도-좌파 연합정치를 펼쳐가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조치를 통해 중산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 중도-좌파 연립정부의 ‘좌경화’를 우려할 필요도 없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유력 정당이 바로 그 정부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아이버슨과 소스키스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비례대표제-다당제-연정형 권력구조를 가진 국가에선 중도정당들이 보수보다는 진보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꾸리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가 아는 선진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그러한 국가들에 속한다.

한국도 비례대표제-다당제-연정형 권력구조로 이루어지는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간다면 정치적 대표성이 충분히 보장되면서 서서히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성숙해갈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철수 세력이 ‘천하사분지계’를 도모하여 중산층 결집에 집중함과 동시에 비례대표제의 강화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유력한 중도보수 정당으로 발전해가길 염원하는 까닭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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