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필] 제나라 환공(桓公), 패자(覇者)의 풍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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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27 조회22,8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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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의 패자(覇者)란 많은 제후국들이 인정하는 리더라는 뜻이다. 춘추의 패자는, 제후들의 회의를 주재하여 이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었다. 또 도리에 어긋난 일을 저지르거나 패자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제후는 벌하였다. 종주국 주(周) 왕실의 위상이 하락한 이래, 주나라 왕을 대신한 자리였다.
환공 5년, 제나라는 노나라와 전쟁을 치렀다. 환공의 등극을 방해한 노나라 장공(莊公)과의 일전이었다. 패전국 노나라가 영토 일부를 할양하며 조약을 맺기로 했다. 회맹(會盟) 장소에서 노나라 장수 조말(曹沫)이 뛰어들어 제 환공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는, 빼앗은 땅의 반환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환공이 승낙하자, 조말은 칼을 거두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회맹을 마치고 환공은 노나라 땅을 돌려주지 않고 조말을 죽이려 했다. 관중이 만류하며 나섰다. “조말의 목을 취하는 것은 작은 일이고, 맹약을 저버려 제후들에게 신의를 잃는 것은 큰 일입니다.” 환공은 관중의 뜻에 따랐다. 이로 인해 제나라를 믿고 따르려는 제후들이 늘어났고, 2년 후 환공은 처음으로 패자의 지위를 얻는다.
환공 23년, 북방 이민족 산융(山戎)에 시달리는 연(燕)나라를 위해 군대를 보내, 산융을 멀리 내쫓았다. 연나라 장공(莊公)이 감사하는 마음에 제 환공을 배웅하다가 그만 국경을 넘어버렸다. 환공이 말했다. “천자가 아니면, 제후가 국경을 넘어 전송하지 않는 법입니다. 저로 인해, 연나라가 예를 어긴 나라가 되도록 할 수는 없지요.” 환공은 연 장공이 건너온 땅을 떼어서 주었다. 그러면서, 연의 시조 소공(召公) 시절처럼 주 왕실을 섬기고 덕정을 베풀라고 당부했다.
환공 30년, 당시 중원 아래쪽에는 초(楚)나라가 호시탐탐 중원 진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제 환공은 중원 질서를 위협하는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발정 난 짐승들이라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제와 초는 멀리 떨어진 나라거늘” 하며, 초 성왕(成王)이 제나라의 침공에 항의했다. 환공은 관중을 통해 이유를 댔다. “초나라 특산물인 포모(苞茅)를 공물로 바치지 않아, 주 왕실이 지내는 제사가 원활하지 않다. 그 책임을 물으러 왔다.” 초 성왕은 공물을 제대로 진상하겠다고 약속했고, 환공은 무력 시위 끝에 물러갔다.
춘추의 첫 패자 환공을 두고 아무도 덕치(德治)를 거론하지 않는다. 패자의 패도(覇道)는 덕(德)의 지배가 아니라 실상 힘의 지배에 가깝다. 패자 환공이 보인 행적과 풍모 이면에는 늘 정치적 의도와 전략이 감춰져 있었다. 그렇지만, 수모를 당했어도 더 큰 목적을 위해 참아내는 인내, 자기 영토를 떼어주는 도량, 실력 행사를 명분론으로 전환시킨 기지(機智) 등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천하를 도모한 자,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마는 실제로 ‘천하가’ 인정한 존재는 손에 꼽힌다. 더군다나 환공은 첫 패자로서 그 ‘처음’을 열었으니 없던 길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이든 무엇이든 간에 ‘처음’에는 예우가 필요한 법이다. 설령 환공이 아무리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8. 8.)
환공 5년, 제나라는 노나라와 전쟁을 치렀다. 환공의 등극을 방해한 노나라 장공(莊公)과의 일전이었다. 패전국 노나라가 영토 일부를 할양하며 조약을 맺기로 했다. 회맹(會盟) 장소에서 노나라 장수 조말(曹沫)이 뛰어들어 제 환공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는, 빼앗은 땅의 반환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환공이 승낙하자, 조말은 칼을 거두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회맹을 마치고 환공은 노나라 땅을 돌려주지 않고 조말을 죽이려 했다. 관중이 만류하며 나섰다. “조말의 목을 취하는 것은 작은 일이고, 맹약을 저버려 제후들에게 신의를 잃는 것은 큰 일입니다.” 환공은 관중의 뜻에 따랐다. 이로 인해 제나라를 믿고 따르려는 제후들이 늘어났고, 2년 후 환공은 처음으로 패자의 지위를 얻는다.
환공 23년, 북방 이민족 산융(山戎)에 시달리는 연(燕)나라를 위해 군대를 보내, 산융을 멀리 내쫓았다. 연나라 장공(莊公)이 감사하는 마음에 제 환공을 배웅하다가 그만 국경을 넘어버렸다. 환공이 말했다. “천자가 아니면, 제후가 국경을 넘어 전송하지 않는 법입니다. 저로 인해, 연나라가 예를 어긴 나라가 되도록 할 수는 없지요.” 환공은 연 장공이 건너온 땅을 떼어서 주었다. 그러면서, 연의 시조 소공(召公) 시절처럼 주 왕실을 섬기고 덕정을 베풀라고 당부했다.
환공 30년, 당시 중원 아래쪽에는 초(楚)나라가 호시탐탐 중원 진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제 환공은 중원 질서를 위협하는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발정 난 짐승들이라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제와 초는 멀리 떨어진 나라거늘” 하며, 초 성왕(成王)이 제나라의 침공에 항의했다. 환공은 관중을 통해 이유를 댔다. “초나라 특산물인 포모(苞茅)를 공물로 바치지 않아, 주 왕실이 지내는 제사가 원활하지 않다. 그 책임을 물으러 왔다.” 초 성왕은 공물을 제대로 진상하겠다고 약속했고, 환공은 무력 시위 끝에 물러갔다.
춘추의 첫 패자 환공을 두고 아무도 덕치(德治)를 거론하지 않는다. 패자의 패도(覇道)는 덕(德)의 지배가 아니라 실상 힘의 지배에 가깝다. 패자 환공이 보인 행적과 풍모 이면에는 늘 정치적 의도와 전략이 감춰져 있었다. 그렇지만, 수모를 당했어도 더 큰 목적을 위해 참아내는 인내, 자기 영토를 떼어주는 도량, 실력 행사를 명분론으로 전환시킨 기지(機智) 등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천하를 도모한 자,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마는 실제로 ‘천하가’ 인정한 존재는 손에 꼽힌다. 더군다나 환공은 첫 패자로서 그 ‘처음’을 열었으니 없던 길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이든 무엇이든 간에 ‘처음’에는 예우가 필요한 법이다. 설령 환공이 아무리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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