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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 또 다른 패자(覇者) 진(晉) 나라, ‘농담’처럼 만들어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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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28 조회24,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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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은 춘추 시대 중원 지역에서 가장 강성했던 나라다. 진(晉)의 시조는 당숙우(唐叔虞)로, 무왕의 아들이고 성왕의 아우였다. 언젠가 형인 성왕이 숙우와 장난치듯 놀면서, 오동나무로 규(珪)를 만들어 주었다. 규는 천자가 제후를 임명할 때 수여하는 징표이다. 성왕이 장난삼아 한 말이었지만 사관이 기억하고 있다가, 숙우를 실제로 제후에 봉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장난으로 한 농담이었을 뿐이다.”

“천자에게 희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천자의 말씀은 사관이 적고, 예의[禮]로써 이루며, 음악으로 노래합니다(天子無戲言. 言則史書之,禮成之,樂歌之).”

하는 수 없이 성왕은 숙우를 당(唐) 땅에다 봉하였다. 진(晉)나라는 이렇게 한 마디 ‘농담’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8대가 지난 목후(穆侯)에 이르러, 다시 ‘농담’ 같은 일이 있었다. 조(條) 땅을 정벌하고 아들을 얻자 목후는 아들 이름을 ‘구(仇)’ 곧 원수[讐]라 지었다. 몇 해 지나 천무(千畝)를 정벌한 다음에 얻은 아들 이름은 성사[成師]라 지었다. 사(師)가 군대란 말이니 ‘성사’는 큰 성공을 뜻한다. 형은 복수해야 할 원수이고 동생은 군대를 가지고 성공할 위인이니, 두 이름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다. 적잖은 시간이 흐른 이후에, 이름의 ‘농담’은 현실이 되었다.

임금으로 있던 구가 죽자 아들 백(伯)이 그 자리를 잇는다. 백은 작은아버지인 성사를 곡옥(曲沃)에 봉하고 환숙(桓叔)이라 칭했다. 곡옥의 성은 진나라 도성보다 컸다. 결국 기회를 만들어 환숙은 진의 도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실패하고 곡옥으로 되돌아갔다. 환숙이 죽자 그 아들 장백(莊伯)도 도성을 쳐서 임금인 효후(孝侯)를 시해하였지만 반발에 부딪쳐 좌절한다. 효후의 아들 악후(鄂侯)가 죽자 재차 공격을 시도하다가 마찬가지로 실패한다. 악후의 아들 애후(哀侯)가 임금이 된다.

장백이 죽고 그 아들 곡옥 무공(武公)에 이르러 드디어 ‘원수’를 무찌르고 ‘성공을 이루게’ 된다. 몇 차례 시도 끝에 무공은 진나라 도성을 점령한다. 그런 다음 진나라 제후로 등극하는 것을 주 왕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온갖 뇌물을 희왕(釐王)에게 갖다 바쳤다. 희왕은 곡옥의 무공을 진나라 제후 즉 진 무공으로 임명한다. 곡옥의 무공으로 있은 지 37년만의 성공이었다. 성사가 곡옥의 환숙이 된 이래, 환숙-장백-무공 3대에 걸쳐 보인 집념의 결실이었다.

농담처럼 나라가 만들어지더니, 농담 같은 이름 탓에 나라는 두 세력으로 나뉘어진 채 내란이 거듭되다가 이렇게 다시 합쳐졌다. 평생토록 추구한 소원을 이루어서였을까. 진 무공은 불과 2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아들 헌공(獻公)이 뒤를 잇는다. 진 헌공, 춘추시대의 진나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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