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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 진(晉) 헌공, 괵(虢)과 우(虞) 두 나라를 함께 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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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5 13:09 조회25,3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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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옥(曲沃)의 무공(武公)이 진(晉)의 제후가 된 지 2년만에 세상을 뜨자 그 아들 궤제(詭諸) 즉 헌공(獻公)이 뒤를 이었다. 아버지 무공이 무력으로 탈취한 제후의 자리였기에 헌공의 권력 기반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무공이 죽인 진나라 제후의 자식들도 여전히 많이 있었다. 헌공은 자신의 권력을 안정시키려 그들 대부분을 죽였다.

살아남은 진의 공자들은 괵(虢)으로 달아났다. 괵나라는 이를 구실 삼아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 헌공은 괵을 당장 정벌하고 싶었지만 조금 더 참으며 때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헌공은 내정을 정비하고 국력을 키웠다.


이제 괵을 치기에 충분하다고 헌공이 생각하기 시작하던 어느날, 신하 순식(荀息)이 헌공에게 제안하였다. 괵을 정벌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우(虞)나라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하고, 괵을 먼저 멸한 다음 우나라도 함께 점령하자고 했다. 우나라 임금이 바보가 아닐진대 진나라 군대에게 길을 내어주겠느냐고 헌공이 반문했다.

순식은 “우나라 임금을 눈 멀게 하면 됩니다”라고 답하고는, 헌공이 아끼는 명마와 보석을 답례품으로 선물하라고 했다. 헌공은 주저하며 되물었다. “내가 아끼는 보물에 눈을 멀게 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귀마저 멀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우나라에는 현신 궁지기(宮之奇)가 있어 임금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을 수 있으리라는 우려의 말이었다.

“보물에 현혹되어 눈이 멀면 원래 귀도 잘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 임금을 바로 잡으려면 집요할 정도로 간언을 거듭해야 합니다. 그러나 궁지기는 여리고 예민한 성격이라 한두 차례 설득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차라리 본인이 떠나버릴 것입니다.” 궁지기가 있다 하더라도 우나라 임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리라는 말이다.

순식의 예상대로 보물에 눈이 먼 우나라 임금은 길을 내어 주었다. 진 헌공은 괵을 정벌하고 진나라로 돌아왔고, 3년 후 2차 정벌을 위해 다시 길을 빌려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궁지기가 나서서, 진나라가 괵나라를 멸한 다음에는 반드시 우나라를 침략할 것이므로 결코 길을 내어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라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비유가 처음 등장한 것도 궁지기에 의해서였다.


순식의 예상은 다 들어맞았다. 우나라 임금은 궁지기의 간언을 듣지 않았고 궁지기는 가족을 거느리고 우나라를 떠나버린다. 1차 원정 때와는 달리, 괵나라를 점령하고 돌아오는 길에 진나라는 우나라마저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만다. 순식이 우나라 임금에게 주었던 보물을 다시 찾아 되돌려주자, 헌공이 웃으며 말한다. “말은 분명 내가 아끼던 그 말이지만 조금 더 늙어버렸구나.”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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