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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립스틱-생활인을 예술가로 바꾸는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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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30 15:48 조회21,7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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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단 한 군데만 화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디를 할까.


화장에 관해 최초로 관념이 생긴 어린애가 엄마 화장품 중에 제일 먼저 손을 대는 물건은 무엇일까. 반대로 할머니가 화장을 한다고 할 때 제일 신경을 쓰는 부위는 어디인가.


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입술`이다. 다급하게 얼굴을 정돈하는 지하철 출근길에서도, 어린애 화장 놀이에서도, 손주 결혼식에 나서는 할머니에게서도 화장 우선순위가 되는 부위는 일단 입술이다. 립스틱은 그런 점에서 화장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만하다. 그것은 립스틱이 원초적인 무의식을 간직한 신체 부위와 연관된 사물이라는 뜻이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피부 건강`을 위해 기초화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화장은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보는` 사람도 중요하다. 화장은 얼굴을 봐주는 타인이 전제돼 있는 행위다. 타인 시선에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피부 상태라기보다는 `붉은 입술`(루즈)이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색조화장이 가능한 아이섀도는 립스틱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이섀도와 립스틱은 둘 다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체 부위에 관련된 사물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며, 입술은 목소리가 나오는 입구다. 하지만 눈짓과 눈동자는 암시적으로 말한다. 입술은 말이 직접 발성되는 문이다. `립스틱 짙게 바른 입술`은 스모키 화장을 강조한 아이라인보다 더 직접적으로 어떤 정념의 강도를 빛깔로 `말한다`.


그러나 `말하는 입`보다 더 원초적인 입의 기능이 있다. `먹는 입`이다. 이때 입술은 실용적인 입술, 생활인의 입술이다. 생활인의 입술에는 립스틱이 필요 없다. 밥을 먹을 때 립스틱이 묻은 입술은 불편하다. 그래서 여자는 밥을 `먹은 후에야` 립스틱을 바른다.


이건 립스틱을 바르는 순간 입술에 `존재 단절`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실용적 입술에서 비실용적 입술로 변신 같은 것을 한다.


 이 변신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심미적 의식이 개입돼 있다. 본래 `아름다움`은 실용성과 모순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소설가 토마스 만은 `토니오크뢰거`에서 "건실한 은행가는 예술가가 될 수 없으며, 생활인은 창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립스틱(lipㆍ입술, stickㆍ지팡이)은 이런 점에서 생활인을 예술가로 바꾸는 `미(美)의 지팡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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