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원격'이 쌀 거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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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18 13:45 조회19,7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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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벽지나 산간 오지에서도 보건소까지만 나가면 우리나라 최고 병원의 최고 명의가 하는 진료를 싸고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고혈압 환자는 뻔히 아는 병에 병원까지 가는 번거로움 없이 약을 탈 수 있는 편리한 제도가 원격의료라고도 한다. 고령화 시대에 늘어나는 노인들 욕창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도 원격진료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좋은 걸 얼른 해야 국가적으로 의료의 질도 높아지고, 소외계층의 의료복지도 개선되고, 일자리도 늘어나서 차세대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데, 일부 의료계의 반대와 법 규정에 가로막혀 있다니 안타까움마저 들 지경이다.
그런데 원격진료 안 하는 지금도 환자가 넘쳐서 3분 알현조차 어려운 종합병원의 의사들을 원격의료로는 과연 충분한 시간 만나게 되는 것인지? 보건소는 적자고 동네병원은 점차 망해서 사라지고 있다는데, 오지에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나가야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며, 그렇게 움직일 능력이 있으면 차라리 조금 먼 큰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을지? 또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3차 병원의 창상전문의를 원격으로라도 만나라지만, 현실적으로 욕창 관리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직접 자주 씻기고 몸을 옮겨 드리며 돌볼 사람이 아닐지? 등 의문은 꼬리를 문다.
사실 원격을 통하면 양질의 고급 서비스를 싼값에, 혹은 무료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요즘 유행에 가깝다. 교육의 경우, 등록금도 비싼데 하버드나 스탠퍼드 등 세계 명문대학이 제공하는 세계적 석학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무료로 들을 수 있다면 교양과목 같은 것은 굳이 학교마다 돈 들여 강의하지 말고 등록금이나 좀 내리자는 움직임도 있다. 그 맥락에서 국경의 장벽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양질의 교육으로 빈곤을 극복하고 좀더 평등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대규모 개방형 온라인강좌(MOOCs)는 교육혁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진다.
그런데 원격의료의 효과가 의심스러운 만큼이나 교육에서도 단지 하버드대학이나 서울대학교의 강의를 온라인상에서 거저 듣는 걸로 교육 격차가 해소될 일은 없어 보인다. 솔직히 명문대의 전공 강좌를 그냥 척 듣고 이해할 만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 것이며, 사실 온라인강좌라는 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좋은 보충재이지만 완전한 대체재는 될 수 없다. 온라인강좌 하나를 잘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도 하려니와, 수강생들이 각자 컴퓨터며 스마트폰이나 통신망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따지면 적지 않으니, 등록금이 싸거나 없다고 해서 그저 싸다고만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료에서도 원격진료를 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프로그램들을 구입하고, 또 보나 마나 한두 해 걸러서 새로 나올 최신 기계로 바꿔대는 비용을 차라리 국토도 별로 넓지도 않은 나라에서는 대면의료를 늘리는 데 쓰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솔직히 저출산 대책 10년에도 아이 낳을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저간의 상황을 볼 때, 원격진료에 저 돈을 쏟아붓는 건 결국 이게 좋은 수익사업이기 때문이지, 순수하게 국민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로 믿기 어렵지 않겠는가.
물론 꼭 필요한 대면의료와 대면교육을 제대로 확충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 원격의료나 개방형 온라인강좌들이 사용된다면 거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원격으로 새 세상이 열릴 듯 호들갑을 떨면서 섣불리 대면의료나 교육의 생태계를 흔드는 일이다. 애초에 교육이나 의료 모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직접적인 교감과 상호작용이 핵심적인 분야이니, 원격으로 오가는 정보에만 치중하다 보면 잃는 것이 더 크지 않겠는가.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한겨레, 2013. 11. 13.)
그런데 원격진료 안 하는 지금도 환자가 넘쳐서 3분 알현조차 어려운 종합병원의 의사들을 원격의료로는 과연 충분한 시간 만나게 되는 것인지? 보건소는 적자고 동네병원은 점차 망해서 사라지고 있다는데, 오지에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나가야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며, 그렇게 움직일 능력이 있으면 차라리 조금 먼 큰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을지? 또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3차 병원의 창상전문의를 원격으로라도 만나라지만, 현실적으로 욕창 관리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직접 자주 씻기고 몸을 옮겨 드리며 돌볼 사람이 아닐지? 등 의문은 꼬리를 문다.
사실 원격을 통하면 양질의 고급 서비스를 싼값에, 혹은 무료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요즘 유행에 가깝다. 교육의 경우, 등록금도 비싼데 하버드나 스탠퍼드 등 세계 명문대학이 제공하는 세계적 석학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무료로 들을 수 있다면 교양과목 같은 것은 굳이 학교마다 돈 들여 강의하지 말고 등록금이나 좀 내리자는 움직임도 있다. 그 맥락에서 국경의 장벽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양질의 교육으로 빈곤을 극복하고 좀더 평등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대규모 개방형 온라인강좌(MOOCs)는 교육혁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진다.
그런데 원격의료의 효과가 의심스러운 만큼이나 교육에서도 단지 하버드대학이나 서울대학교의 강의를 온라인상에서 거저 듣는 걸로 교육 격차가 해소될 일은 없어 보인다. 솔직히 명문대의 전공 강좌를 그냥 척 듣고 이해할 만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 것이며, 사실 온라인강좌라는 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좋은 보충재이지만 완전한 대체재는 될 수 없다. 온라인강좌 하나를 잘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도 하려니와, 수강생들이 각자 컴퓨터며 스마트폰이나 통신망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따지면 적지 않으니, 등록금이 싸거나 없다고 해서 그저 싸다고만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료에서도 원격진료를 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프로그램들을 구입하고, 또 보나 마나 한두 해 걸러서 새로 나올 최신 기계로 바꿔대는 비용을 차라리 국토도 별로 넓지도 않은 나라에서는 대면의료를 늘리는 데 쓰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솔직히 저출산 대책 10년에도 아이 낳을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저간의 상황을 볼 때, 원격진료에 저 돈을 쏟아붓는 건 결국 이게 좋은 수익사업이기 때문이지, 순수하게 국민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로 믿기 어렵지 않겠는가.
물론 꼭 필요한 대면의료와 대면교육을 제대로 확충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 원격의료나 개방형 온라인강좌들이 사용된다면 거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원격으로 새 세상이 열릴 듯 호들갑을 떨면서 섣불리 대면의료나 교육의 생태계를 흔드는 일이다. 애초에 교육이나 의료 모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직접적인 교감과 상호작용이 핵심적인 분야이니, 원격으로 오가는 정보에만 치중하다 보면 잃는 것이 더 크지 않겠는가.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한겨레, 201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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