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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진짜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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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27 15:43 조회19,4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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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안 본 지 오래됐다. <무한도전>도 자주 보니 시들하다. 남은 게 <개그콘서트>였는데, 그마저 재미없다. 한때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봉숭아학당’의 동혁이 형, ‘사마귀 유치원’, ‘남보원’,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용감한 녀석들’, ‘멘붕 스쿨’ 등 뛰어난 사회풍자와 정치풍자를 자랑했던 <개콘>에는 이제 사랑 이야기(‘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두근두근’, ‘놈놈놈’ 등)나 가족 이야기(‘편하게 있어’, ‘딸바보’ 등)뿐이다. 경찰서에 잡혀온 가난하고 억울한 이웃을 다룬 ‘나쁜 사람’ 같은 코너조차 ‘귀막힌 경찰서’처럼 사회성을 상실한 형태로 변했고, 인기 있다는 ‘뿜 엔터테인먼트’도 ‘시청률의 제왕’과 매한가지로 연예계의 자기풍자에 그친다.

그래서 주말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이외수 통편집 사건”도 있고 해서 <진짜 사나이>를 보았다. 박근혜 집권 이후 시작된 프로그램이라는데, 1970년대 <배달의 기수>의 비장함이나, 어머니를 얼싸안고 우는 90년대 초 <우정의 무대>의 감상성에서 벗어나 요즘 시대에 맞게 ‘리얼 버라이어티쇼’ 포맷을 따르고 있었다. 이 포맷 속으로 예비군에 해당하는 연예인들을 신병인 양 집어넣고 ‘굴리자’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것을 보면서 시청자는 자신의 군대 경험과 이들의 경험을 대조하게 된다. 더 나아가 모욕의 흔적이 사라진 가짜 얼차려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군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할 능력을 갖춰가는 연예인 “고문관”들의 모습을 보며 군대의 긍정적 기능을 느끼게 된다. 킬킬대며 시청하는 동안 군대와 친밀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는 잠시뿐이고 금세 기분이 나빠졌다. 청와대 안보실장, 국정원장, 국방장관이 다 육사 출신이라 군사정권 분위기가 풀풀 나는 시대에 방송사가 군대를 다룬 프로그램까지 갖다 바치는 것이 꼴사나웠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유도 있다. <개콘> 같은 기존 프로그램은 풍자성을 잃고,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이 새롭게 제작되는 것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부 시기와 달리 대중매체에 대한 정부 통제력이 보도 영역을 넘어서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깊숙이 관철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박근혜 정부의 섬세한 손길 탓인지(하태경 의원의 이외수씨 출연 비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매체 종사자들의 자기검열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보도는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사실성 문제에 부딪히며 사실성 검증을 통과해도 왜 다른 사실이 아니라 바로 그 사실이 선별되어 보도됐는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날씨나 단풍에 대한 보도가 국정감사보다 더 많다면 의심을 유발한다. 유능한 시청자에게 보도 영역에서 정부의 의도 관철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다르다. 그것은 쾌락과 즐거움을 생산한다. 그리고 즐거움은 주체의 성찰을 앞질러 주체를 주파해 나간다. 즐거움은 자명한 주관적 사실이기 때문에 보도처럼 비판적으로 따질 것이 없다. 군대 프로그램이라 해도 보고 재미있으면 그것은 재미있는 것이며, 그러면 이미 프로그램의 의도는 성취된 것이다.

여기엔 ‘민주화 이후의 권위주의’의 특징이 어려 있다. 권위주의는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관철되며, 그 틀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의 일환으로 법을 이용한 지배 그리고 구속과 기소 및 재판 과정 자체를 징벌로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박근혜 정부는 그런 방식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예능 프로그램의 변화에서 보듯이 쾌락을 통해 권위주의를 관철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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