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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양평의 에너지 독립실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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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1-08 15:47 조회19,9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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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쯤 이 칼럼 난에서 양평의 어느 가족이 새집을 짓고 에너지 독립을 시도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족은 지난 3월부터 이 집에서 살고 있고, 이제 첫 겨울을 맞았다. 입주 후부터 11월까지는 집에서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로 공급했다. 3월과 4월에는 영하 5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이 꽤 있었지만, 햇빛이 좋았고 들어온 에너지를 대부분 집에서 품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난방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불을 때지 않고 버틴 것이 아니라, 집안 온도가 항상 20도에서 25도 사이로 유지되는 실내에서 24시간 내내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으며 쾌적하게 지냈다.

12월 들어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왔다. 바깥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날도 있었고, 해가 거의 없는 날도 며칠 있었다. 실내온도가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도 여러 차례 있었다. 난방도 시작했다. 그래도 보통 집에 비하면 난방을 하지 않는 거나 진배없다. 이번 12월 한 달 동안 양평 가족이 사는 집과 같은 크기의 보통 집에서 실내온도를 20도로 유지하면서 살려면 석유 500ℓ는 태워야 한다. 이에 비해 12월 들어 25일 동안 양평의 이 집에서 사용한 난방 에너지는 석유로 환산하면 4ℓ도 안된다. 1%도 안되니 난방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집에서는 난방 에너지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일회용 부탄가스를 때는 캠핑용 가스난로를 사용한다. 작은 가스통에 담겨 있는 부탄가스의 무게는 220g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량은 석유 0.3ℓ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12월 들어 25일 동안 이 집에서 난방을 위해 사용한 부탄가스통은 10개였다. 31일까지 넉넉하게 5개 더 쓴다고 하면 석유를 4.5ℓ 때는 셈이다.

이 집에서는 성능을 좀 더 세밀하게 평가하기 위해 실내온도, 환기장치를 통해 들어오거나 나가는 공기온도, 이산화탄소 농도도 측정한다. 12월14일 양평의 최저기온은 영하 11.8도, 15일은 영하 11.6도로 날이 아주 추웠다. 그러나 이틀 모두 해가 좋았기에 난방을 하지 않았다. 아침 8시쯤의 실내온도는 14일이 18.2도, 15일이 18.6도여서 조금 서늘한 느낌이 있었지만, 해가 들어오면서 온도가 올라가서 낮 12시쯤에는 이틀 모두 약 21.5도, 오후 4시쯤에는 23도나 25도가 되었다. 밤 12시쯤 잠자리에 들기 전의 온도는 20.5도 또는 22도였다. 자는 동안 온도가 1도 이상 떨어지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불을 넉넉하게 덮고 자는 이들 가족에게는 더 쾌적한 잠을 선사한다.

환기는 일부러 창을 열어서 할 필요가 없다. 밖으로 나가는 공기로부터 열을 회수해서 실내로 돌려주는 환기장치가 하루 종일 돌아가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보통 집의 경우 창에 비닐을 덮고 지내면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0ppm을 웃돌게 된다. 새벽에는 3000ppm까지도 올라간다. 그러나 양평 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보통 1000ppm을 넘지 않는다. 부탄가스를 땔 때만 새벽에 1500ppm까지 올라간다. 한국 정부에서 정한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 이하니까, 공기질이 대체로 기준값 이하의 좋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다.

양평의 에너지 독립 실험은 거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주 적은 양이긴 하지만 부탄가스도 사용하지 않으면 실험은 완성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태양광발전기의 용량과 축전지를 조금 더 늘릴 계획이다. 난방 에너지가 계산을 통해 예상한 것보다 더 적게 들어간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전지판을 몇 개만 더 설치하면 여기서 나오는 전기로 난방까지 충분히 하게 될 것이다.


양평의 실험은 우리가 내복입기 캠페인이나 겨울철 실내온도 18도 유지라는 강요 없이도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실험이 널리 퍼지지 않으면 정부에서 내놓는 이런저런 에너지 절약 시책은 시늉에 그치고 말 뿐이고, 에너지 소비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소를 증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강한 힘을 얻을 것이다.

큰 변화는 종종 작은 실천에 의해 촉발된다. 어느 대학생의 대자보 붙이는 행동이 전국으로 번졌듯이, 양평의 실험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퍼져나가야 한다. 대자보를 붙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드는 것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실천이 계속 쌓여가야만 이 땅에서 원자력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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