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종선]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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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5:09 조회20,5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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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펴냄(1991)
우리 시대에 다산 정약용만큼 두루 사랑을 받는 역사적 지식인은 또 없을 것이다. 다산은 누가 뭐래도 위대한 학자다. 실학을 집대성한 그가 생전에 저술한 책만 해도 500권이 넘고, 역시 조선 지식계의 레전드급 대가인 김정희조차 “감히 다산의 세계를 논평할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 여기서 새삼 그의 학문적 위대성을 재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권의 책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뿐이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정약용이 천주교에 대한 대탄압인 신유사화에 연루되어 대역죄인이 되고 만 것은 나이 마흔의 일이었다. 셋째형 정약종과 조카사위 황사영은 처형되고 그는 둘째형 정약전과 더불어 유배형에 처해진다. 이 정도면 가문은 풍비박산이다. 당시에 서학이란 조선의 지배질서와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엎는 반역적인 사상이었다. 뿌리를 뽑고 흙까지 털어내지 않으면 안 될 불온한 이념이었다.
궁벽하기 짝이 없는 시골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유배생활을 시작한 정약용의 마음은 얼마나 까마득하게 답답하였을까. 그는 책을 읽고 저술하는 일을 통해서 시간을 이겨낸다. 스스로 술회하기를 밤낮으로 저술에 몰두하는 바람에 왼쪽 팔이 마비되어 폐인이 다 되었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런 와중에도 두 아들과 둘째형, 그리고 제자들에게 편지 보내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 편지글들을 모은 이 책에는 무엇보다 생활인으로서 정약용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아들들에게는 책을 편집하고 각 장을 구성하는 방법뿐 아니라, 채소를 심고 아욱을 뜯는 법, 양계를 하는 법 같은 원예와 농사 지식을 일러준다. 흑산도에서 외롭게 유배 중이라 건강이 걱정스러운 둘째형에게는 섬에서 들개를 잡는 법이며 개고기를 삶고 양념을 하는 법까지 세세히 편지에 적어 보낸다.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가난한 선비가 먹고살 길은 과일과 채소를 기르는 일이라며, 이를 통해 1년에 엽전 50꿰미와 20꿰미를 벌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뽕나무까지 심어 누에를 친다면 30꿰미를 더 벌 수 있는데, 선비가 1년에 100꿰미의 엽전이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기 충분하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이런 대목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러시아 하층민들이 월급이 30루블이니 1년 연금이 120루블이니 하며 악착스레 삶을 꾸려가는 장면이 겹쳐진다. 그래서 이 책은 묘하게 우습고 슬프게도 재미있다. 이런 생활인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처연함이나 살가움 같은 것이 이 책이 사랑받는 비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찍이 다산의 글 가운데 아름다운 편지글들을 가려뽑고 번역하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으로 묶어낸 편역자는 박석무이다. 그가 이 책을 내놓자마자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곧이어 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난다. 편역자 자신이 수배자가 되고 결국 옥살이를 한다. 이 책은 그 후 교도소라는 현대판 유배지에 갇혔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지금은 중고등학교와 공공도서관의 권장도서가 되어 읽히고 있다.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란 가차 없으면서도 관대한 것이다.
염종선 창비 편집국장
(2013. 10. 13.)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펴냄(1991)
우리 시대에 다산 정약용만큼 두루 사랑을 받는 역사적 지식인은 또 없을 것이다. 다산은 누가 뭐래도 위대한 학자다. 실학을 집대성한 그가 생전에 저술한 책만 해도 500권이 넘고, 역시 조선 지식계의 레전드급 대가인 김정희조차 “감히 다산의 세계를 논평할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 여기서 새삼 그의 학문적 위대성을 재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권의 책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뿐이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정약용이 천주교에 대한 대탄압인 신유사화에 연루되어 대역죄인이 되고 만 것은 나이 마흔의 일이었다. 셋째형 정약종과 조카사위 황사영은 처형되고 그는 둘째형 정약전과 더불어 유배형에 처해진다. 이 정도면 가문은 풍비박산이다. 당시에 서학이란 조선의 지배질서와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엎는 반역적인 사상이었다. 뿌리를 뽑고 흙까지 털어내지 않으면 안 될 불온한 이념이었다.
궁벽하기 짝이 없는 시골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유배생활을 시작한 정약용의 마음은 얼마나 까마득하게 답답하였을까. 그는 책을 읽고 저술하는 일을 통해서 시간을 이겨낸다. 스스로 술회하기를 밤낮으로 저술에 몰두하는 바람에 왼쪽 팔이 마비되어 폐인이 다 되었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런 와중에도 두 아들과 둘째형, 그리고 제자들에게 편지 보내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 편지글들을 모은 이 책에는 무엇보다 생활인으로서 정약용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아들들에게는 책을 편집하고 각 장을 구성하는 방법뿐 아니라, 채소를 심고 아욱을 뜯는 법, 양계를 하는 법 같은 원예와 농사 지식을 일러준다. 흑산도에서 외롭게 유배 중이라 건강이 걱정스러운 둘째형에게는 섬에서 들개를 잡는 법이며 개고기를 삶고 양념을 하는 법까지 세세히 편지에 적어 보낸다.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가난한 선비가 먹고살 길은 과일과 채소를 기르는 일이라며, 이를 통해 1년에 엽전 50꿰미와 20꿰미를 벌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뽕나무까지 심어 누에를 친다면 30꿰미를 더 벌 수 있는데, 선비가 1년에 100꿰미의 엽전이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기 충분하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이런 대목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러시아 하층민들이 월급이 30루블이니 1년 연금이 120루블이니 하며 악착스레 삶을 꾸려가는 장면이 겹쳐진다. 그래서 이 책은 묘하게 우습고 슬프게도 재미있다. 이런 생활인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처연함이나 살가움 같은 것이 이 책이 사랑받는 비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찍이 다산의 글 가운데 아름다운 편지글들을 가려뽑고 번역하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으로 묶어낸 편역자는 박석무이다. 그가 이 책을 내놓자마자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곧이어 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난다. 편역자 자신이 수배자가 되고 결국 옥살이를 한다. 이 책은 그 후 교도소라는 현대판 유배지에 갇혔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지금은 중고등학교와 공공도서관의 권장도서가 되어 읽히고 있다.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란 가차 없으면서도 관대한 것이다.
염종선 창비 편집국장
(201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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