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필] 류준필교수의 고전산책-오(吳)나라 태백(太伯), 몸에 문신하고 머리카락을 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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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05 조회21,2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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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주(周)의 천하를 세우고는 여러 친척과 공신들에게 영토를 하사한다. 무왕을 도와 세운 공이 혁혁한 아우들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불러 노(魯)와 연(燕) 땅을 나누어 준다. 아버지 문왕 시절부터 재상의 역할을 맡은 강태공 등에게는 제(齊) 땅이 내려진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수의 혈족과 공신들이 봉토를 받아 제후로 등극한다.
봉토를 나누느라 한참 애쓰던 때에 무왕은 뜻밖의 명을 내린다. 저 장강 하류의 구우(句吳) 땅을 다스리는 주장(周章)을 찾아 오(吳)의 제후로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오나라는 태백이 세운 나라였고 주장은 당시 그곳의 왕이었다. 태백은 무왕의 할아버지인 계력(季歷)의 큰형이니, 비록 멀리 떨어진 거리이기는 해도 무왕과 주장은 아주 가까운 혈족 사이이다.
태백의 아버지인 고공단보(古公亶父)에게는 태백ㆍ중옹(仲雍)ㆍ계력 등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고공단보는 맏아들 태백이 아닌 막내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계력의 아들인 손자 창(昌)이 주나라를 크게 일으키리라 믿어서였다. 태백이 아버지 고공단보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나서는, 곧장 집을 떠나버린다. 아버지의 뜻을 존중해서였다. 그 길에 태백의 아우 중옹도 함께 했다.
그 두 사람이 달아나듯 길을 떠나 이른 곳은 형만(荊蠻)이었다. 자신들이 살던 곳과는 풍속이 다를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낙후된 지역이었다. 태백과 중옹은 그 지역 풍속에 따라 ‘몸에 문신을 하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런 행위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음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결국 “아우 계력에게 왕위를 양보하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文身斷髮,以讓季歷) ‘양보하고 허락한다’는 뜻의 “양(讓)”이라는 이 한 글자는, 이후 오나라 역사의 갈피갈피에 새겨진다.
천하를 구한 무왕이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그 위대한 성취는 ‘양보와 사양’이 있어 가능할 수 있었다. 설령 폭군 주(紂) 같은 ‘나쁜’ 권력에 맞선 ‘좋은’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권력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오나라 태백의 존재가 웅변하듯 환기하는 바,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함께 있을 때만 좋은 권력도 가능한 법이 아닐까. 무왕이 주장을 불러 오나라 제후에 봉할 때의 마음도 혹시 같은 마음이었을까.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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