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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고향 당산나무가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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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5 13:57 조회25,2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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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의 ‘산림 지도’를 공개했다. 이 지도는 2012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수오미 NPP 위성이 지구를 1년간 관측해 위성촬영 데이터를 모아 만든 그래픽 이미지다. 대륙마다 녹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초목색깔인데 색깔이 진하면 진할수록 울창한 산림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당 지도 속에서 우리나라는 짙은 녹색으로 녹지가 무성하게 분포돼 있다. 그러나 강원도 등 동쪽이 짙은 초록인 반면 대도시는 색깔이 옅다. 특히 서울은 녹지가 많이 사라진 옅은 갈색을 띠고 있다. 도시 개발로 인해 서울의 산림이 훼손된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지도를 보면서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생각이 났다. 벌써 내가 이 동네에 산 지도 5년째 접어든다. 나는 남들 눈에 그럴듯한 것보다는 내가 살기에 그럴듯한 것을 집이라고 여겨 왔기에 전세살이일망정 이 동네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까운 데에 재래시장이 있어, 요즘 같은 여름밤에는 글을 쓰다 출출하면 시장 옆 포장마차 국숫집에 들러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밤하늘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는 와중에 뉴타운 열풍이 불었고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판잣집들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야말로 서울에 이런 데가 있을까 싶게 너른 공터가 생겼다. 그런데 그 공터는 오랫동안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이주 협상을 끝내지 못한 집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공터를 마주보고 있는 낡은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어둠 속에서 섬처럼 떠 있는 그 집들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외로운 불빛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렇게 집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떠났지만 공터는 초목으로 무성했다. 자연은 시간만 주면 웅덩이를 만들고 풀을 만들고 나무를 키운다. 휴일에는 그 공터의 웅덩이에 앉아 물고기가 생겼나 관찰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하지만 서울의 그 너른 땅이 언제까지나 나 같은 시인의 감상을 위해 초목 우거진 공터로 남아 있을 리는 만무했다. 결국 공터에 가림막이 쳐지고 뉴타운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그 공터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느티나무가 베어졌던 것이다. 서울의 변두리, 당산나무가 있는 동네에 살면서 그 나무 밑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과 재래시장에서 찬거리를 마련해오던 여인들이 땀을 식히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속에 내가 투영돼 있는 것이 나는 큰 위안이었다. 당산나무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그 사람들 속에 내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작은 공동체였던 것이다.


나무가 베어지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친근한 모습도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나무 밑 작은 공동체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고향에서 당산나무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겼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살아 있는 책이다. 아이들은 그 나무 아래에서 뛰어놀며 나무에 부는 바람과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나무가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진다. 그렇게 오래된 동네의 추억은 나무의 죽음과 함께 모두 옛날이 됐다.


 이제 변두리였던 우리 동네에는 20~30층이 넘는 초고층 대단위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상가와 병원, 중·고등학교가 세워졌고 동사무소와 보건소까지 이전해 왔다. 나는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개발은 찬성하지 않는다. 우주에서 본 우리나라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울의 산림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큰 덩치의 산과 숲 대신 나무 한 그루를 본다. 우리 주변에서 지킬 수도 있었을 그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살이의 소중한 만남이나 소통도 사라진다. 나는 그런 나무들이 그리운 것이다.

박형준 시인
(한국경제, 201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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