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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가버릴 것까지 끌어안는 모든 시간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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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06 12:29 조회3,1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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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평론집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 펴낸 정홍수

문학의 첫 마음 배운 대가들 필두로 중견 신예 아울러

문학은 돌아보는 시선으로 '사라지는 현재' 생생 포착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것…문학과 비평 구동하는 핵심"



편집자로 살아온 문학평론가 정홍수 씨가 세 번째 평론집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문학동네)을 펴냈다. 대산문학상을 받은 두 번째 평론집 이후 9년 동안 여러 매체의 청탁에 응하거나 작품집 해설로 수록한 평문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그가 처음 문학을 배웠던 대가들의 작품론을 앞머리에 내세웠고, 동세대 작가들은 물론 새로운 힘을 확인한 젊은 작가들까지 아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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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새 평론집을 펴낸 문학평론가 정홍수. 한국문학 편집자로 오래 살아온 그는 "생각을 잇댈 수 있게 언어의 몸을 빌려준 많은 작가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번 평론집 제목은 최정례(1955~2021) 시인의 글에서 차용했다. 시인은 "어느 날 시간은 나에게 대항하여 칼을 휘두를 것"이라며 "나는 결국 고꾸라지고 말 것"이니 "지금 스쳐 지나는 것들을 향한 내 사무침이 내 속에서 그치지 않기를, 가버린 것들을 향한 이 무모한 집착도 가버릴 것들을 향한 사랑으로 잇대어지기를, 그 모두가 다시 일어나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되기를" 기다린다고 썼다. 가버린 것들을 되새기며 가버릴 것들까지 사랑으로 끌어안는 시간의 연대가 사무친다.
"문학이라는 게 다른 어떤 것보다 현재를 생생하게 포착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포착하는 방식이 항상 돌아보는 시선인 거죠. 사실 현재라고 하는 것도 계속 사라지는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걸 특히 소설은 회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그게 늘 문학 안에 있었던 거죠. 굳이 특별하게 진술을 안 할 뿐, 겉으로는 회고의 시선으로 보는 거지만 사실은 현재를 사라져가는 안에서 보고 있는 겁니다. 그게 문학의 구체성이나 생생함을 이끌어내는 힘인데, 우연히 최정례 시인의 글 안에서 평소에 느꼈던 걸 발견한 거예요."
서울 서교동, 그가 대표 겸 편집자로 일하는 '강' 출판사에서 정홍수를 만났다. 1995년 선배의 권유와 지원으로 출판사를 설립해 꾸준히 한국문학 일선에서 출판을 지속해온 그는 편집자의 시선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비평가의 길을 걸어왔다. 막 출판사를 차렸을 때 절친 김소진(1964~1997)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소설가로 나서자 출판사 한 켠에 집필 공간을 내주기도 했다. 그가 친구 뒤편에서 집필한 '김소진론'으로 1996년 '문학사상' 평론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편집자 겸 평론가의 길을 걸어온 지 30년이 다 돼간다.
1부에는 김윤식 서정인 윤흥길 황석영 같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이름들을 모았다. 정홍수는 "이들의 생각과 언어가 내게는 문학이었다"고 서두에 밝혔거니와 "이런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는 게 이번 평론집에서 제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국문과에서 만난 비평가 김윤식(1936~2018)은 그에게 '문학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다.
upi202306020026.644x.0.jpg"늘 어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김윤식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궁금했고, 글을 쓰면 선생님께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죠. 나에게는 어떤 기준 같은 거지요.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는 한 건 아닌데 김윤식 선생님 글을 읽으면 아 이게 문학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계속 한 거죠. 그때 형성된 게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책 맨 앞에 선생님을 모시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정작 김윤식 교수와 가까이 지낸 건 아니었다. 대학원도 가지 않고 졸업학기에 출판사에 취직했던 그가 신인상을 받아 수상하는 자리에서 마주친 김윤식은 "자네가 여기 웬일로 왔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후일 그가 쓴 평문을 보고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는데, 그는 탁월한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이자 비평가로 살다간 스승을 두고 이렇게 썼다.
-나는 다음 대목을 어떤 떨림 없이 읽을 수 없다. 저 문체는 그 자신의 시대로부터 울려오는 목소리이기도 하리라. <글쓰기란 그 누구도 '인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인간만큼 '약한 존재'가 없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 그러기에 이런 문학만큼 강한 것이 없고 또 약한 것이 없다는 것.>
인간이 약한 존재라는 것, 이 지점이 문학이나 문학비평이 작동하는 핵심이라고 공감하는 정홍수는 1부에 한국문학평론집으로는 예외적으로 다룬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1933~2018)의 작품세계에서도 느껴지는 '인간 이해'라고 했다. 그는 "인간들이 보통 모순되고 복잡한 존재라고들 말하는데 결국 인간이 약하니까 그런 것"이라며 "인간들이 일관되고 강하게 자기 신념을 갖고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면 문학이라는 인간 탐사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정홍수는 필립 로스를 조명한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해줘 고마워요'에서 로스는 "생생하고 정확한 기억과 언어의 창조적 재현을 통해 소설의 중요한 밑그림을 그렸다"면서 "한마디로 그 세계에 이르면 인물들은 물론이고 거리와 집까지 펄펄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썼다. 그가 적시한 로스 소설의 '구체성'이란 단순한 '리얼리티'와는 어떻게 다를까. upi202305300196.680x.0.jpg

▲정홍수는 "이야기와 결부된 구체성이야말로 문학의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세상에 대해 말하는 문학만의 방식이 존재하는 거죠. 철학이나 사회학 같은 다른 학문도 있겠지만 문학의 핵심은 개별성이고 구체성인 것 같아요. 구체성 안에서의 생생함 같은 것이죠. 이야기와 결부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리얼리티와는 다른 발견되는 구체성인 거지요. 그 발견하는 과정이 결국 소설가들에게는 상상력이고 이야기이고, 그게 문학의 존재 이유인 것 같기도 합니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 얻게 된 깨달음이나 인식은 철학적 인식이나 사회학적 인식하고는 좀 질이 다른 것 같아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문학을 붙들어 왔습니다."
이어지는 2~4부에는 중견 작가에서부터 신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포진해 있다. 소설가 정지돈 심윤경 황정은 김혜진 편혜영 윤대녕 권여선 은희경 성석제 이서수 최윤 정지아 김이정 이혜경 심아진 한수영 이승주 김금희 이승우 고영범 김민정 김홍정 오수연, 시인 장석 박철 황규관을 비롯해 평론가 임우기와 강경석의 텍스트까지 아우른다.
정홍수는 새로운 작가들의 힘을 발견하는 보람이 크다고 했다. 그는 "새로 등장한 작가들이 좁은 세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들이 많았다"면서 "이들도 계속해서 뭔가 이렇게 새로운 시도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의 어떤 이야기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작가를 발견하는 기쁨이 컸다"고 말했다.
후배 평론가 신형철이 정홍수의 평문을 '내면이 있는 문장'이라고 평한 것을 두고 그는 다른 자리에서 "나는 대학원도 안 갔고 학위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내면화와 문장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평문은 이론에 의존해 먼저 틀을 만들어 꿰어맞추기보다는 철저하게 작품 안으로 들어가 비평을 전개하는 스타일이어서 가독성이 높은 편이다. 그에게 대산문학상을 안겨준 심사평에는 "구체적인 삶의 지문(指紋)을 과하지 않은 미문(美文)에 담아냈다"는 대목도 나온다.
"편집자로 살아온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자는 계속 남의 글을 읽는 직업인데, 좋은 문장들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게 있을 겁니다. 문학 안에 있는 걸 가져오려고 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딱딱한 언어가 되지 않고 미문이라는 말도 나온 것 같습니다. 비평의 글들이라는 게 작품 안에 있는 언어들이에요. 그걸 가져와서 문장을 조금 바꾸고 하는 거지요. 문학 비평도 문학적인 글쓰기인데, 과도한 이론이나 개념들이 들어오면서 글들이 난삽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upi202305300197.680x.0.jpg

▲정홍수는 "콘텐츠를 중심에 놓는 문학과 영화 사이 교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지난 평론집 표제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허우 샤오시엔 영화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처럼, 그는 문학과 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는 "문학 작품에서 느끼는 감흥과 별로 다르지 않은 영화들이 많다"면서 "가끔 영화에 대한 글도 쓰는 과정이 문학 비평 못지않게 좋다"고 했다. 영상과 디지털 시대 문학을 걱정하는 시선이 많은 흐름과는 다른 층위의 발언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영화는 작품성이 높은 것들이고, 이즈음 영상화를 위한 '콘텐츠' 확보 차원의 문학과 영화에는 그도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참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콘텐츠'라는 말인데, 콘텐츠 위주 문학과 영화 사이의 교류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은 문학을 원작으로 삼는 경우도 줄어들었지만 웹툰 쪽이 영화와 훨씬 더 친화성이 크죠. 문학은 문학의 길을 가면 되는 것 같습니다. 가다가 만나지면 만나는 거죠."
정홍수는 "편집자가 직업이고 평론가라는 자의식은 적었던 것 같다"면서 "그런 것 치고는 평론집을 세 권이나 냈는데 이 정도만 해도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강단 아카데미와 떨어져 살았던 부분이 좋은 점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었겠지만 의도했던 건 전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메이저 문학출판사들이 유기하는 한국문학 출판의 '사각지대'를 그가 어렵사리 꾸려가는 '강' 출판사에서 떠맡고 있는 듯하다는 세평을 두고는 "가끔은 메이저들의 판단 기준에 대해 조금 질문이 생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문학을 읽고 문학에 대해 쓰는 시간'에 잇대어지기를 소망하는 사랑의 세계.
-과거의 틈입에도 열려 있지만 가버릴 시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도 개방되어 있는 현재를 시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처음의 굴절과 상실, 가지 못한 길의 회한, 현재의 누추와 불안, 기다림과 약속의 실패, 그래서는 이미 도래한 것들의 좌절 속에서 미래를 감싸는 그 모든 시간의 성실한 누적과 포갬으로만 가능한 어떤 세계.


정홍수 문학평론가

UPI 뉴스  2023년 6월 2일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30530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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