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게임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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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10 18:19 조회2,9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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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추악한 싸움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전류 전쟁이다. 직류와 교류의 격돌이었는데, 싸움의 수단으로 재판이 이용되기도 했다. 직류를 개발한 토머스 에디슨이 자기가 발명한 전구로 뉴욕의 밤을 밝히겠다고 떠들었을 때가 1881년이었고, 프랑스에서는 교류발전기를 개발해 특허를 내는 중이었다.
에디슨의 회사에 취업한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모터를 만들었으나 에디슨으로부터 외면당했다.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회사로 옮겼고, 에디슨의 직류에 강력한 경쟁 상대로 부상했다. 직류의 단점은 멀리 송전할 경우 손실이 크다는 것이었다. 교류는 변압이 가능하여 고압선으로 어디든지 보낼 수 있었다. 에디슨 회사는 교류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문을 팸플릿으로 제작해 배포했다. 교류는 전압이 높아 감전사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내용과 함께, 전선에 매달린 시신 사진을 버젓이 실었다.
해럴드 브라운은 전기 전문가로 자처하고 나선 젊은이였다. 고압선을 땅에 묻는 것은 화약 창고 안에 촛불을 켜 두는 짓과 같다고 외쳤다. 교류 회사에서 “직류 회사의 나팔수”라고 비난을 퍼붓자 갑자기 명사로 떠올랐다. 브라운은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할 필요를 느꼈다. 직류든 교류든 고압이면 위험하다는 처음의 생각을 버리고 직류편에 서기로 마음먹었다. “교류는 죽음을 부르고, 직류는 무해하다.”
위험과 안전을 대비하여 보여줄 증명이 필요했다. 브라운이 고안한 장치는 개를 이용한 실험이었고, 에디슨은 몰래 장비를 지원했다. 본격적인 동물 실험이 전개되었고, 조작된 실험에 수많은 개가 죽었다. 그것도 모자라 송아지와 말에 이어 코끼리까지 희생의 대상이 되었다. 직류와 교류의 다툼은 공포심을 자극하는 거짓말과 비방으로 얼룩졌다. 에디슨은 직류를 이용한 조명등·발전기·모터 등에 특허를 내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교류의 승리였다.
표준전쟁에서 이긴 결과 오늘날 발전소에서 가정과 회사와 공장에 배달하는 모든 전기는 교류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 동안 서서히 직류의 수요가 창출되었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품이 직류로 구동되었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자율주행자동차 동력도 직류다. 디지털 혁명 시대의 컴퓨터와 반도체 역시 직류를 필요로 한다. 배터리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게다가 직류도 원거리 송전이 가능하도록 기술이 개발된 지 오래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멋진 발명품은 폐기되고, 불편했던 것이 가장 편리한 물건으로 둔갑했다. 그렇다고 직류가 교류를 누르고 역전승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직류와 교류 모두가 필요한 시대다. 전기자동차는 부품의 반도체마다 다른 전압의 직류를 공급해야 하는데, 바퀴를 굴리는 모터는 교류로 작동시킨다. 필요한 순간에 직류와 교류의 빠른 변환이 필요하다. 직류와 교류의 대립 시대에서 직류와 교류의 전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기만 놓고 본다면 거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장단점의 비교에 따른 편리성의 차이는 시점마다 존재하지만, 결국 표준화의 결정도 객관적 평점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승패가 갈라져도 옳고 그름이 확인되는 결과가 아닌 것은 스포츠 경기와 유사하다.
전류 전쟁에 유추하여 보는 일이 어느 정도 타당한지 모르나, 일상의 옳고 그름도 대부분 그러하다. 정의는 없거나 불분명하다는 단정은 불편하지만, 정의가 있더라도 그것은 시대의 정의다. 한시적 옳음은 존재할 수 있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재판에도 그런 요소와 경향이 흐른다. 정의의 판단이라기 보다 게임의 요소가 강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인간의 규범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몰려오는 조짐인지 모른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법률신문 2023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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