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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청년기 문화 한국인, 노년기 문화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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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3-04 15:13 조회1,9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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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종은 거란 공격을 피해서 나주까지 피난을 떠났다. 그런데 처음에는 비겁했지만 결국 이겼다. 결국 고려를 지켰다. 강한 적 앞에서 약자가 싸워서 이기는 현종의 방식이다. 끓어오르는 피를 억누르는 지혜가 있어야 가능한 선택이다. 노회한 노년기 기질이자 지혜다. < KBS '고려거란전쟁' 예고편 화면 갈무리 >
 

문화는 특정 민족이나 국민의 무의식이다. 이런 문화적 무의식을 잘 이해하는 게 마케팅에서 중요할까? 

마케팅 분야의 스테디셀러인 ‘컬처코드’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Clotaitr Rapaile)는 그렇다고 본다. 문화적 무의식을 이해하는 게 마케팅에 특히 해외 마케팅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마케팅을 위해서 미국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차이를 흥미 있게 비교한다. 유럽이 노년기 문화라면 미국은 청년기 문화라는 거다. 

미국 문화는 마치 청년기 나이에 있는 사람처럼 그런 기질을 지닌 채 행동한다는 거다. 그가 말하는 미국의 청년기적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역사나 경험을 존중하기보다 역사의 교훈을 거부하고 세계를 개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극단적인 것이 주는 매혹에 빠지고 변화와 재창조에 매우 개방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실수를 해도 다시 기회가 오리라는 확신이 있고 양극단만 보는 가운데 사물은 좋거나 나쁘고 재미있거나 따분하며 의미 있거나 무가치하다. 

그가 보기에 미국 문화는 성숙마저 포기한 영원한 청년기 문화다. 이런 미국 문화의 특징, 미국인의 무의식을 알고 마케팅 전략, 광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거다.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분석을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인 가운데 가장 열혈 기질을 지닌 곳으로 동북 지방 사람을 든다. 중국에서는 열혈 기질을 가진 지방 사람으로 산둥 사람과 동북 사람을 든다. 

중국인은 산둥 사내를 두고 산둥 호한(好漢), 즉 산둥 대장부라고 쳐준다. 처음 산둥에 갔을 때 56도짜리 독한 바이주를 바이주 전용 작은 잔이 아니라 아예 맥주잔에 따라 주면서 “깐뻬이!”를 외칠 때 첫눈에 알아봤다. 

산둥 사람들은 공자 후예이기 이전에 술 먹고 호랑이도 손으로 때려잡는 무송의 후예라는 것을. 이런 산둥 사람들 기질 한국 사람들과 비슷하다. 화끈하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이런 산둥 사람도 동북 지방 조선족은 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이런 산둥 대장부보다 더 강한 기질을 지닌 사내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동북 지방 조선족이다. 

흔히 조선족 기질을 두고 흔히 중국인들이 이런 농담을 한다. 동북 지방에서 흑사회라고 불리는 조폭들 싸우는 걸 보면 그 사람들이 조선족인지 한족인지 금방 안다는 거다. 조선족 조폭은 자기편이 상대편보다 적든지 많든지 세가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떠나서 싸우는데 한족은 세가 불리하다 싶으면 절대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거다. 

결과야 어찌 되든 코피가 나든 머리가 깨지든 죽는 힘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이 조선족이다. 승패 따지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투지의 한국 축구처럼! 그런데 한족들은 굳이 그런 싸움하지 않는다. 질 것 같은 싸움은 피한 채 이길만한 싸움만 한다.

자신이 약자일 때 강자를 상대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인이라면 보기에는 상대보다 내가 약해 보여도 이래야 한다 싶으면 죽기 살기로 맞서 싸운다. 물론 그렇게 싸우다 보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정면 승부를 즐긴다. 이거다 싶으면 승패 생각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돌진한다. 피해 가는 법이 없다. 무모하다. 무모하게 덤비다 보면 나중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힘이 약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미래를 위한 치욕의 시간을 택한 사람보다 약하지만 맞서서 장렬하게 죽은 사람을 찬양한다. 

이런 한국인 기질,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지적한 미국의 청년기적 문화 기질을 담았다. 미국 문화가 세계적인 환영을 받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미국 문화가 지닌 이런 청년기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다. 

청년기 문화와 연령층에는 청년 세대에게는 동질감과 친근감을 주고, 노년기 문화와 연령층에는 향수를 주지 않는가? 

한국과 미국 콘텐츠는 폭력과 섹스라는 청년기 문화의 대표적인 코드를 공유한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요즘 들어 세계적 환영을 받는 것도 이런 청년기적 특징이 있어서다. 미국 문화, 한국 문화가 지닌 힘이고 매력이다. 한국인이 유럽 문화보다 미국 문화를 더 좋아하는 무의식적 이유다.

그런데 중국인의 기질 이런 한국인의 문화적 무의식과 비교하면 노년기 기질이다. 역사와 살아온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세상과 일을 좋거나 나쁘거나 재미있거나 따분하거나처럼 극단적인 둘로 나누어 보지 않고 극단적인 것의 매혹에 빠지지 않는다. 회색지대를 중요하게 여긴다. 

청년의 기질에 부정적이다. 그래서 인생사 모든 일에는 늘 복과 화가 같이 들어 있다는 새옹지마가 인생을 대하는 기본 철학이 되고 큰 뜻을 위해서는 한신처럼 하찮은 인간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도 참는다. 마오쩌둥처럼 힘이 약할 때는 정면으로 맞붙기보다는 강한 상대를 슬슬 피하면서 빈틈을 노리면서 장기전을 준비한다. 한순간 불끈하여 승부를 가리려고 달려들지 않는다. 

한국인과 중국인 기질이 이렇게 다르다. 중국에 안중근, 윤봉길이 없는 이유이자 중국인이 이 두 사람을 그토록 위대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텔레비전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대중적 차원에서 고려 현종을 재발견했다. 강한 적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이순신 방식도 있고 현종 방식도 있다. 

이순신이 열두 척을 가지고도 정면 대결해 끝내 승리한 게 한국인의 기질을 상징한다. 이순신이 영웅인 것은 단순히 이겼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이런 한국인의 기질과 맞닿아서 그렇다. 안중근, 윤봉길의 희생도 이런 계열이다. 

약하더라도 승패 불문하고 대의와 명분에 목숨을 걸고 가야 할 당위의 길을 가면서 생즉사, 사즉생으로 정신으로 정면 대결한다. 흑은 흑이고 백은 백이라고 여기는 피가 끓는 청년기 기질이다.

그런데 현종 방식은 최후 승리를 위해서 일단 피한다. 현종은 거란 공격을 피해서 나주까지 피난을 떠났다. 그런데 처음에는 비겁했지만 결국 이겼다. 결국 고려를 지켰다. 강한 적 앞에서 약자가 싸워서 이기는 현종의 방식이다. 끓어오르는 피를 억누르는 지혜가 있어야 가능한 선택이다. 노회한 노년기 기질이자 지혜다.

중국인은 청년도 노인이라면 한국인은 노인도 청년이다. 한중 두 나라 사람이 기질적으로 지닌 장점과 단점이다. 개인 삶의 온 과정을 청년기적 기질과 행동으로만 살아서도 안 되고 반대로 노년기적 기질과 행동으로 살 수도 없다. 

때와 상황에 맞게 둘을 잘 구사해야 한다. 개인 삶에서만이 아니라 나라의 외교에서도 기업의 마케팅 전략, 생존 전략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비즈니스포스트 2024년 2월 14일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4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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