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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 제 환공(桓公), 관중(管仲)을 살려 패자(覇者)의 자격을 갖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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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26 조회22,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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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 환공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노나라 장공(莊公)은 땅을 치며 분노한다. 공자 규(糾)를 임금으로 만들어 제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절호의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공의 뇌리에는 제나라에서 비명횡사한 아버지(노나라 환공)의 원혼이 계속 떠올랐다. 미련을 버릴 수 없는 장공은 공자 규를 임금으로 만들고자 군사를 동원해서 제나라로 향했다. 그러나 제나라 군대는 강했다. 장공은 전투에서 대패했다.

포숙(鮑叔)이 제 환공의 명이라며 노 장공에게 요구했다. “공자 규는 나와 형제간이니 노나라가 직접 죽여라. 나에게 활을 쏜 관중(管仲)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 분을 풀려 하니, 제나라로 압송해 가겠다.” 하는 수 없이 장공은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을 포숙의 손에 넘겼다. 관중을 압송하던 포숙은 제나라 국경을 넘자 관중을 풀어준다. 관중도 예견했다는 듯 서로 손을 잡는다.

애초에 환공은 관중을 죽이려 했다. 그러자 포숙이 나서서 관중을 살려 중용하라고 설득했다. “주군을 모실 수 있었던 건 제게 행운이었고, 주군께서는 이제 임금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은 여기까지입니다. 주군께서 제나라 임금으로 만족하신다면 모르겠으나, 천하를 품는 패자(覇者)가 되고자 하신다면, 관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관중이 어떤 인재인지 포숙은 다시 강조한다. “관중이 있는 나라라면 그 어떤 나라든 크게 흥성할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夷吾所居國國重,不可失也).”

결국 환공은 포숙의 말을 따라 관중에게 국정을 맡긴다. 관중은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을 통합하는 제도를 시행했고, 상공업 등 실업을 진흥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것은 부국강병의 제나라를 신속하게 만드는 노선이었다. 한편으로, 관중의 정책은 제나라의 시조 강태공이 제시한 제나라의 건국 이념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였다. 건국 초기 강태공도 유사한 정책을 폈었다.

춘추의 첫 번째 패자 제 환공의 곁에는 망명의 고통을 같이 한 포숙이 있었다. 무엇보다 생사를 같이 한 사이였기에 환공은 포숙을 신뢰했다. 포숙은 환공이 안주하지 않도록 더 높은 비전으로 자극했다. 그리고 그 비전에 어울리는 인재를 추천했다. 환공이 한때 적이었던 관중을 중용할 수 있었던 것은 포숙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아울러 환공이 자신의 반대 세력조차 넉넉한 관용으로 품을 수 있는 만한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 이런 것이었을까. 관중과 포숙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모든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상상이 다소 과하다면, 적어도 포숙만은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물론, 나 자신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신화에 너무 붙들려 있어서 하는 몽상일 뿐이라 하면 그만이지만.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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