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필] ‘관포지교(管鮑之交)’, ‘포숙(鮑叔)’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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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27 조회22,5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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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환공이 관중을 중용하면서부터, 제나라의 위세는 나날이 높아졌다. 아홉 번이나 제후들의 회맹을 주재했고 주나라 왕위 계승 문제를 한 차례 바로 잡았다(九合諸侯, 一匡天下). 이러했기에 제나라 환공은 춘추의 첫 패자(覇者)로 인정을 받았다.
환공이 걸어간 패자의 길에는 관중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다들 관중이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환공을 임금으로 만든 당사자는 포숙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중은 환공을 죽이려고까지 한 반대 세력에 속했다.
환공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포숙은 자기 공로를 앞세우기는커녕 관중을 천거하고 자신은 뒤로 물러났다. 포숙과 관중은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다. 남들의 시선과는 달리 포숙은 관중의 잠재된 능력을 확신했다. 참된 지기(知己)를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故事)도 그래서 생겨났다.
관중과 포숙은 젊은 시절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이 생기면 늘 관중이 더 많은 돈을 챙겼다. 그래도 포숙은 관중이 탐욕스럽다 여기지 않고, 어려운 집안 형편 탓이라 했다. 관중은 무리한 사업을 벌여 큰 손해도 곧잘 입혔건만, 포숙은 돈이란 벌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는 법이라고만 했다.
세 차례 벼슬길에 나갔으나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세 차례, 전쟁에 나섰다가 패잔병으로 도망쳐 온 적도 세 번씩이나 있던 관중이었다. 관중의 됨됨이를 비난하는 소리가 일었으나, 포숙은 아랑곳하지 않고 관중을 두둔했다. 관중의 진가를 알아보는 주인을 만나지 못한 탓에 벼슬에서 쫓겨났을 뿐이고, 또 봉양할 노모가 계시기에 어떻게든 목숨을 보존했을 뿐이라 했다.
‘관포지교’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든다. 끝까지 믿고 지지한 포숙과는 달리 관중이 포숙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관포지교’라고 하지만 포숙의 일방적 신뢰만이 부각될 뿐, 관중은 늘 받기만 했다. 그렇다면 ‘지기(知己)’란 상호 호혜의 쌍방향과는 무관한 것인가. 한쪽의 변함없는 신뢰와 지지, 그리고 일방적 양보가 먼저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관중을 알아준 포숙이 되고 싶은가, 포숙이 알아본 관중이 되고 싶은가.’ 아마도, 내가 알아본 누군가보다는,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이지 싶다. ‘우정’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 정작 우리 자신에게 절실한 바는, 다른 누군가가 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닌 듯하다.
관중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포숙’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어떨까. 확신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절실할 때, 잘 믿기지 않는 나 스스로를 내가 믿고자 할 때, ‘포숙’은 꼭 필요한 존재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관중이 남긴 이 유명한 한 구절에서, ‘포숙’은 어쩌면 관중 자신인지도 모른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환공이 걸어간 패자의 길에는 관중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다들 관중이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환공을 임금으로 만든 당사자는 포숙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중은 환공을 죽이려고까지 한 반대 세력에 속했다.
환공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포숙은 자기 공로를 앞세우기는커녕 관중을 천거하고 자신은 뒤로 물러났다. 포숙과 관중은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다. 남들의 시선과는 달리 포숙은 관중의 잠재된 능력을 확신했다. 참된 지기(知己)를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故事)도 그래서 생겨났다.
관중과 포숙은 젊은 시절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이 생기면 늘 관중이 더 많은 돈을 챙겼다. 그래도 포숙은 관중이 탐욕스럽다 여기지 않고, 어려운 집안 형편 탓이라 했다. 관중은 무리한 사업을 벌여 큰 손해도 곧잘 입혔건만, 포숙은 돈이란 벌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는 법이라고만 했다.
세 차례 벼슬길에 나갔으나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세 차례, 전쟁에 나섰다가 패잔병으로 도망쳐 온 적도 세 번씩이나 있던 관중이었다. 관중의 됨됨이를 비난하는 소리가 일었으나, 포숙은 아랑곳하지 않고 관중을 두둔했다. 관중의 진가를 알아보는 주인을 만나지 못한 탓에 벼슬에서 쫓겨났을 뿐이고, 또 봉양할 노모가 계시기에 어떻게든 목숨을 보존했을 뿐이라 했다.
‘관포지교’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든다. 끝까지 믿고 지지한 포숙과는 달리 관중이 포숙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관포지교’라고 하지만 포숙의 일방적 신뢰만이 부각될 뿐, 관중은 늘 받기만 했다. 그렇다면 ‘지기(知己)’란 상호 호혜의 쌍방향과는 무관한 것인가. 한쪽의 변함없는 신뢰와 지지, 그리고 일방적 양보가 먼저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관중을 알아준 포숙이 되고 싶은가, 포숙이 알아본 관중이 되고 싶은가.’ 아마도, 내가 알아본 누군가보다는,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이지 싶다. ‘우정’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 정작 우리 자신에게 절실한 바는, 다른 누군가가 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닌 듯하다.
관중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포숙’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어떨까. 확신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절실할 때, 잘 믿기지 않는 나 스스로를 내가 믿고자 할 때, ‘포숙’은 꼭 필요한 존재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관중이 남긴 이 유명한 한 구절에서, ‘포숙’은 어쩌면 관중 자신인지도 모른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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