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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우리 모두의 정부'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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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18 13:13 조회20,1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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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가 참여정부로 이어진 지 얼마 안 지나서의 일이다. 정치성향은 보수지만 인품은 훌륭하다고 여겨오던 한 선배가 “‘남의 정부’ 밑에서 계속 사는 거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한다면 당시의 나는 ‘나의 정부’를 갖고 있었고, 따라서 선배의 그 답답함에 공감하긴 어려운 터였다. 그 선배의 심정은 이명박 정부를 살면서 대충 헤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10년 전의 그 선배를, 그 선배의 참을성을 존경하기까지 했다.


이건 비극이다. 나와 그 선배를 포함한 다수의 우리 시민들은 ‘87년 민주화체제’ 출범 이후 5년 혹은 10년마다 서로들 번갈아가며 ‘남의 정부’ 아래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체제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게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심하다. 반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회세력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정치과정에서 배제하고 소외시키려 들고 있다. 국가기관들의 선거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이젠 심지어 공안정국 조성에 의한 사상과 결사의 자유 탄압도 서슴지 않을 태세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 이석기 내란음모 기소,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공무원노조 설립 거부와 압수수색 등 일련의 ‘편 가르기’ 혹은 ‘솎아내기’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인즉슨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이 ‘배제의 정치’는 87년 체제의 속성이다. 이 승자독식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선거에서 1등을 한 개인 혹은 정당이 정치권력을 독차지할 수 있다. 1등의 독주 혹은 독선은 대부분 합법적이란 것이다. 2등 이하는 1등이 특별히 허락하지 않는 한 그저 그 배제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2등 이하를 지지한 사회세력이나 시민들 역시 대개는 그렇게 지내야 한다. ‘남의 정부’ 밑에서 살듯 말이다.


최근 이 비극을 정치개혁을 통해 종식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이재오·정병국 의원 등과 민주당 원혜영·유인태 의원 등 여야 의원 106명이 포함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지난 8일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기 위한 개헌안을 마련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 모임은 또한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전국 조직인 ‘개헌추진 국민운동’도 결성키로 했다. 이어 지난 11일에는 김덕룡·김영춘·김효석·정대철·이계안·이부영·인명진 등 이른바 ‘온건개혁 중도성향’ 인사들이 출신정당을 초월해 구성한 ‘국민동행’이 대국민 제안문을 발표했다. 그들의 주장은 제왕적 대통령제 등 독점적 권력구조의 개편이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었다. 일부 언론매체도 권력구조 문제의 의제화에 가담하고 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승자독식 체제의 핵심 요소는 대통령제가 아닌 양당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국의 대처 정부를 상기해보라. 설령 의원내각제로 바꾼다 할지라도 양당제에 따른 진영 간 대결 정치가 지배하는 한 독선과 독주, 그리고 배제의 정치는 존속한다. 어차피 정부는 양대 정당 중 의회의 다수당이 된 어느 한 정당에 의해 단독으로 구성되고, 그 정당의 대표인 총리는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까지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자독식 체제의 종식을 위한 더 효과적인 방안은 비례대표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해 이념과 정책기조가 뚜렷이 구별되는 셋 이상의 유력 정당을 상시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특히 유력한 중도정당의 부상이 필수적이다. 그 경우 진보파나 보수파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는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기가 어렵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진보와 중도, 보수와 중도, 혹은 진보와 보수 정당 간의 연립정부 형성이 통상적인 일이 된다. 중도정당은 진보파와 보수파 모두에게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것이 어떠한 정당조합에 의해 형성된 것이든, 이러한 연립정부 상황의 지속은 우리 시민들의 대다수가 늘 ‘자기 정부’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요컨대, 우리가 항상 ‘우리 정부’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은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과 같은 비례대표제의 개혁을 통해 열어가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배제의 정치가 아닌 ‘포용의 정치’를 구현해갈 다당제가 확립될 수 있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은 그런 후에 추진해갈 일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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