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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문(門) - 다른 존재로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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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1-08 15:37 조회20,1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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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인 의미에서 문(門)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에 이르기 위한 경계이자 출입의 통로다.


문은 독립적인 사물이 아니라 벽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을 분리한다. 이 분리에 따라 문의 안팎은 두 개의 `세계`로 나뉜다. `같은 무리`와 관련된 문하(門下), 동문(同門), 문중(門中), 가문(家門), 문벌(門閥)이란 말이 모두 `문`의 공간적 은유를 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의 대문, 아파트 현관문은 단지 공간적 의미의 집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을 경계로 당신은 직장인에서 아빠로, 사회인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바뀐다.


움츠린 어깨가 이완되고 찡그린 얼굴에 미소가 감도는 것은 친근한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문을 경계로 당신은 다른 세계에 들어섰으며, 거기에 다른 시간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른 시간은 다른 존재다.


성당의 문이나 절의 일주문은 이 사물의 특성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다. 세상의 인간 막장들이 거주할 것 같은 황량한 동네 어귀에 있는 성당을 안다. 세속도시의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성당의 나무문은 가볍게 밀면 열린다.


그러나 이 사물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동네의 어떤 사람도 이곳이 자기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임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어깨의 힘은 빠지고, 들떴던 숨소리는 나지막해지며, 수다스러웠던 목소리는 묵상에 잠긴다. 이 사물을 경계로 탕진된 정신은 자기 영혼과 만날 것이다.


불가의 일주문(一柱門)은 아예 개폐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문 역시 다르지 않다. 늘 열린 커다란 문에 들어선 이들은 제 안에 있는 게 `잡스러움`이었다는 걸 그제야 자각하게 된다.

집요하게 무언가를 쫓아다니던 욕망이 일순간 중단되는 고요를 마주하는 것도 이때다.


노자는 "방은 창과 문을 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으며, 철학자 베냐민은 "메시아는 좁은 문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존재는 다른 차원으로 열린 `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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