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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전력대란과 외환위기, 몸통은 하나 얼굴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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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8-19 14:33 조회23,3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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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일 100만 명 가까운 공무원이 35도 안팎의 찜통 청사에서 처절한 ‘절전 투쟁’을 했다고 한다. 최악의 전력대란(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솔선수범 차원에서 청사 냉방을 껐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중시해 유리로 외벽을 마감한 최신 호화 청사일수록 더 찜통이었을 것이다. 정부청사에서는 부채, 물수건, 얼린 생수, 휴대용 아이스팩 등 더위에 대항하는 온갖 묘기가 백출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웅적 절전 투쟁을 한 공무원들도, 지켜보는 국민도 답답한 느낌을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력난이 원전 비리로 멈춰 선 원전 3기 때문만도 아니요, 위기는 이번 달로, 올해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1년 1415만 가구를 덮친 대정전 사고는 가을의 초입인 9월 15일에 일어났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전력난 문제는 파고들수록 답답함이 더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이상, 2024년까지 11기(현재 23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정부 계획(산업통상자원부 대통령 업무보고)이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가 엄청난 난항을 겪는 것을 보면 장거리 송전로 확보도 산 넘어 산이다. 전력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너무 싼 전기요금과 불합리한 요금 체계도 손보기가 쉽지 않다. 세제 개편안을 ‘원점 재검토’시킨 ‘세금폭탄론’ ‘경기침체론’ ‘부자(대기업) 더 부담론’ ‘정책 수순·절차(합의)론’은 향후 나올 요금 체계 개편안도 비켜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답답함을 관통하는 것은 하나다.


그것은 기후변화, 에너지·자원 위기, 원전 위기, 재정 위기 등 전 세계가 다 겪는 정책 환경 변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저열한 적응·변신 능력이다. 특히 격렬하게 충돌하는 가치와 이익을 조정하기는커녕 이를 증폭시켜 우리 사회를 진퇴양난으로 만드는 적대적 의존에 양당 독과점을 보장하는 정치 제도다.


사실 지금 겪는 전력대란 자체가 환경 변화에 대한 심각한 적응·변신 능력의 기념비다. 전기는 1차 에너지원인 석유, 석탄, 가스 등을 태워서 생산한다. 아무리 열 변환 효율이 뛰어난 발전소라고 할지라도 이 과정에서 50∼60%의 열손실이 일어난다. 따라서 정수장으로 끌어 온 강물보다 수돗물이 비싸야 하듯이 2차·청정에너지인 전기가 1차 에너지원에 비해 단위 열량당 가격이 비싸야 마땅하다. 실제 가정용 전기요금과 원유를 열량 기준으로 비교하면 2009년 기준 일본은 전기요금이 원유의 307.5%다. 미국은 181.3%, 영국은 303.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13.3%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은 59.9%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석유, 가스, 석탄 등을 태워 난방을 하는 것보다 전기로 난방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는 얘기다. 당연히 가정, 상가, 농장, 공장 가릴 것 없이 전기 수요가 급증하게 되어 있다.


석유, 가스, 석탄 가격은 국제시장 가격과 환율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2000년대 들어 국제 에너지·자원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원가와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책정된 전기요금과의 격차가 점점 커졌다. 이것이 2000년대 중후반 들어 전력 사용량이 더 가파르게 증가한 이유다. 1차 에너지원 가격 급등은 세계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기요금은 외환위기 전 환율과 지금의 의료수가나 수돗물 가격처럼 시장원리와 무관하게 철저하게 공공적으로(?),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책정돼 왔다. 그 결과 2000년 산업용 전기요금 가격을 100이라면 2009년은 112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와 정치가 그런대로 작동하는 미국은 148, 프랑스는 297, 독일은 276, 이탈리아는 310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겪는 전력대란은 1997년 외환위기와 흡사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당시 선진국 허장성세를 부리던 정치의 통제하에 있던 금리와 환율이 시장을 너무 무시해서 터진 사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시 내외 금리 차를 노린 단기 외화 차입 및 장기 대출과 실력보다 고평가된 원화로 인한 국제수지 적자 등이 폭증하여 임계점을 넘는 것을 정치가 제대로 감지하지도 못했고, 뒤늦게나마 알고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신용카드 대란, 부동산·전세 대란, 사교육 대란, 고학력 실업 대란 등 모든 대란의 뿌리와 구조는 극히 유사하다. 엉뚱한 가치를 좇는 경직된 공적 통제·규제와 급변한 시장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선진국은 작은 문제로부터 큰 교훈과 구조적, 제도적 변화를 끌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거듭된 대란으로부터도 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원흉’ 같아 보이는 사람이나 정권을 성토하고, 다음 선거에 이용하고 묻어 버리는 짓을 반복해 왔다. 공무원이기 이전에 시민이자 유권자인 100만 명이 유리 찜통에서 진정으로 반성하고, 증오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 다음은 각종 규제와 정책을 만지는 공무원 자신이 아닐까?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일보, 201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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