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명절과 정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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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02 17:28 조회20,5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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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회담에서 한 말들을 보면 국회까지 찾아가긴 했지만 내켜서 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회담을 한 이유는 추석 같은 명절에 활성화되는 친족 커뮤니케이션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였던 듯싶다. 박 대통령이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도 평검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김을 빼려는 것 못지않게 추석 밥상머리 대화의 초점을 채 총장의 도덕성 문제로 끌고 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원고심려가 원하는 결과에 이르렀는지 의문스럽다. 식구들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제 자식을 “혼내자”(婚內子)라 불러 모두를 웃게 하기도 한 걸 보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깨알 같은’ 숙고에 입각한 행보가 의도한 수준의 효과를 내지는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집집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확실히 감지할 수 있을 만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명절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 “정치 이야기는 그만!”이라는 함구 규칙이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 차례 지내고 즐겁게 먹고 잘 헤어지려면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주제가 되면 40대 아들과 칠순 아버지의 대화가 순조롭지 못하고, 매형과 처남, 또는 삼촌과 조카의 대화조차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일단 정치가 주제로 부상하면, 정치적 무관심조차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무관심이 도피처가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모두 ‘공모해서’ 정치가 대화 주제로 솟아오르는 것을 신중하게 피하는 것이다.
친척 가운데는 이런 협력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어렴풋이 숨은 규칙을 느끼지만 깔아뭉개는 난폭한 연장자도 있다. 그런 이가 “아뿔싸” 숨은 규칙을 위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큰형이 그러면 동생은 이제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가고 형수는 “그만해요”라고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매형이 그렇게 하면 조카가 “외삼촌, 요즘 사업은 어떠세요?”라며 아버지 말을 싹둑 잘라버린다.
이런 함구 규칙의 출현은 세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다른 사람의 견해가 자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좁아졌다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는 대화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맞장구쳐 주는 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도덕성’이 제어하기 어려울 만큼 심한 이견이 친족 사이에서조차 농후하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함구 대상이 정치인 것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견은 차이를 넘어서 적대적 성격으로 물들어 있다. 이견은 더 밑바닥에 있는 유대와 공감 위에서 발생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대화를 자극하고 활성화한다. 하지만 함구는 이견을 인지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다. 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일종의 정전과 같은 것이다. 일상 속에 그것도 친족 사이에서마저 60년 된 정전체제가 복제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억압된 적대가 귀환해 온다는 점이다. 귀환의 장소가 어디일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함구 규칙을 받아들이게 되는 대면 상황에서 자유로운 온라인 공간이다. 여기서는 현실의 대면 상황에서 채워졌던 안전장치가 풀리고 총구가 불을 뿜는다. 한쪽에서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보듯이 호남-민주정부-종북좌파-여성을 향한 공격성이 제약 없이 풀려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조중동-새누리-보수 개신교를 향한 경멸이 뿜어나온다. 중도가 모두가 편히 다닐 넓은 대로가 되지 못하고 외줄처럼 되어가고 있다. 공론이 위태로운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3. 9. 24.)
하지만 그런 원고심려가 원하는 결과에 이르렀는지 의문스럽다. 식구들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제 자식을 “혼내자”(婚內子)라 불러 모두를 웃게 하기도 한 걸 보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깨알 같은’ 숙고에 입각한 행보가 의도한 수준의 효과를 내지는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집집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확실히 감지할 수 있을 만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명절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 “정치 이야기는 그만!”이라는 함구 규칙이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 차례 지내고 즐겁게 먹고 잘 헤어지려면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주제가 되면 40대 아들과 칠순 아버지의 대화가 순조롭지 못하고, 매형과 처남, 또는 삼촌과 조카의 대화조차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일단 정치가 주제로 부상하면, 정치적 무관심조차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무관심이 도피처가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모두 ‘공모해서’ 정치가 대화 주제로 솟아오르는 것을 신중하게 피하는 것이다.
친척 가운데는 이런 협력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어렴풋이 숨은 규칙을 느끼지만 깔아뭉개는 난폭한 연장자도 있다. 그런 이가 “아뿔싸” 숨은 규칙을 위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큰형이 그러면 동생은 이제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가고 형수는 “그만해요”라고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매형이 그렇게 하면 조카가 “외삼촌, 요즘 사업은 어떠세요?”라며 아버지 말을 싹둑 잘라버린다.
이런 함구 규칙의 출현은 세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다른 사람의 견해가 자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좁아졌다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는 대화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맞장구쳐 주는 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도덕성’이 제어하기 어려울 만큼 심한 이견이 친족 사이에서조차 농후하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함구 대상이 정치인 것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견은 차이를 넘어서 적대적 성격으로 물들어 있다. 이견은 더 밑바닥에 있는 유대와 공감 위에서 발생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대화를 자극하고 활성화한다. 하지만 함구는 이견을 인지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다. 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일종의 정전과 같은 것이다. 일상 속에 그것도 친족 사이에서마저 60년 된 정전체제가 복제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억압된 적대가 귀환해 온다는 점이다. 귀환의 장소가 어디일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함구 규칙을 받아들이게 되는 대면 상황에서 자유로운 온라인 공간이다. 여기서는 현실의 대면 상황에서 채워졌던 안전장치가 풀리고 총구가 불을 뿜는다. 한쪽에서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보듯이 호남-민주정부-종북좌파-여성을 향한 공격성이 제약 없이 풀려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조중동-새누리-보수 개신교를 향한 경멸이 뿜어나온다. 중도가 모두가 편히 다닐 넓은 대로가 되지 못하고 외줄처럼 되어가고 있다. 공론이 위태로운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3.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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