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종선] 낙인찍고 적출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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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5:05 조회19,9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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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펴냄(2002)
스테디셀러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엄밀한 의미의 스테디셀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판권으로 짐작해보건대, 오랜 기간 꾸준히 팔린 책은 분명하지만 잘 팔린 책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난에 수전 손택의 저서를 소개하는 것은 결코 주저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질병에 대한 고급한 사회적 에세이이면서, 수전 손택 자신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평론가이자 작가로서 한창 각광을 받고 있던 그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면서 이 글을 집필했다고 한다.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쩌면 단순하다. 질병은 그냥 질병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 질병에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신화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것이며 질병과 연관된 사회적인 낙인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죽음을 대표하는 병은 결핵이었고, 20세기에 그것은 암이었다. 결핵과 암에는 뭔가 반감을 일으키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금기가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죽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결핵은 ‘창조성’이란 신화와 결합되어 “어느 비평가는 결핵이 점차 사라지는 바람에 오늘날 문학과 예술이 쇠퇴하고 있다고 설명할 정도”로 오도되기도 했고, 초기에는 암이 정신적 결함이나 우울함이라는 특정한 성격과 관련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만연하기도 했다. 문제는 질병에 대한 부당한 은유가 곧 질병에 걸린 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질병에 대한 텍스트만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대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노골적으로 질병의 이미지를 활용한다는 지은이의 지적이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제거되어야 할 폐결핵으로 비유하다가 종내는 암으로 규정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결핵의 경우 같은 ‘부드러운 치료법’(결핵요양소, 추방)이 아니라 ‘발본적인 치료법’(수술, 화장)을 써야 한다는 집단적 광기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리는 불과 몇년 전 한국 사회에 있었던 ‘좌파 적출’이란 피가 뚝뚝 듣는 듯한 섬뜩한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그 기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구적인 인사들 또한 사회비판적인 사람들을 고질적인 암 덩어리로 취급한다. 선진 대한민국이 가는 길을 방해하고 선동적인 언사로 불평불만을 확산시켜 국가를 뒤엎으려는 세력은 당연히 제거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둬서는 이 악성 종양이 건전한 신체에 전이되고 결국에는 나라 전체가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찰을 해야 하고 여론을 조작해서라도 이들을 찍어내야 한다.
수전 손택은 암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깊어지고 치료법이 발달할수록 암을 둘러싼 언어들도 뚜렷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의 치료법에 대한 언어가 공격적 전쟁에서 쓰는 군사적 은유에서 신체의 자연적 면역능력에 관한 은유로 바뀌어나갈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럴 것인가.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하는가.
염종선 창비 편집국장
(한겨레, 2013. 8. 11.)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펴냄(2002)
스테디셀러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엄밀한 의미의 스테디셀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판권으로 짐작해보건대, 오랜 기간 꾸준히 팔린 책은 분명하지만 잘 팔린 책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난에 수전 손택의 저서를 소개하는 것은 결코 주저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질병에 대한 고급한 사회적 에세이이면서, 수전 손택 자신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평론가이자 작가로서 한창 각광을 받고 있던 그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면서 이 글을 집필했다고 한다.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쩌면 단순하다. 질병은 그냥 질병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 질병에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신화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것이며 질병과 연관된 사회적인 낙인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죽음을 대표하는 병은 결핵이었고, 20세기에 그것은 암이었다. 결핵과 암에는 뭔가 반감을 일으키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금기가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죽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결핵은 ‘창조성’이란 신화와 결합되어 “어느 비평가는 결핵이 점차 사라지는 바람에 오늘날 문학과 예술이 쇠퇴하고 있다고 설명할 정도”로 오도되기도 했고, 초기에는 암이 정신적 결함이나 우울함이라는 특정한 성격과 관련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만연하기도 했다. 문제는 질병에 대한 부당한 은유가 곧 질병에 걸린 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질병에 대한 텍스트만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대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노골적으로 질병의 이미지를 활용한다는 지은이의 지적이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제거되어야 할 폐결핵으로 비유하다가 종내는 암으로 규정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결핵의 경우 같은 ‘부드러운 치료법’(결핵요양소, 추방)이 아니라 ‘발본적인 치료법’(수술, 화장)을 써야 한다는 집단적 광기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리는 불과 몇년 전 한국 사회에 있었던 ‘좌파 적출’이란 피가 뚝뚝 듣는 듯한 섬뜩한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그 기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구적인 인사들 또한 사회비판적인 사람들을 고질적인 암 덩어리로 취급한다. 선진 대한민국이 가는 길을 방해하고 선동적인 언사로 불평불만을 확산시켜 국가를 뒤엎으려는 세력은 당연히 제거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둬서는 이 악성 종양이 건전한 신체에 전이되고 결국에는 나라 전체가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찰을 해야 하고 여론을 조작해서라도 이들을 찍어내야 한다.
수전 손택은 암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깊어지고 치료법이 발달할수록 암을 둘러싼 언어들도 뚜렷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의 치료법에 대한 언어가 공격적 전쟁에서 쓰는 군사적 은유에서 신체의 자연적 면역능력에 관한 은유로 바뀌어나갈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럴 것인가.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하는가.
염종선 창비 편집국장
(한겨레, 201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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