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필] 두 개의 오(吳)나라, ‘외길’이라는 이름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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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06 조회20,4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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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계력(季歷)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남쪽 저 멀리 떠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였던가. 태백과 중옹은 변방의 풍속을 좇아 ‘문신단발(文身斷髮)’까지 했다.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그렇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몸에 새겨 넣어야만 돌이킬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을까.
무왕이 태백의 후손 주장(周章)을 제후로 임명하던 때는 오나라의 시조 태백으로부터 이미 5대가 지난 다음이었다. 그런데 무왕은 주장만이 아니라 주장의 동생인 우중(虞仲)에게도 영토를 하사한다. “그 하나는 우(虞)나라로서 중원 지역에 있고, 다른 하나는 오(吳)나라인데 오랑캐 땅에 있었다.”(其一虞,在中國;其一吳,在夷蠻) ‘되돌아감’은 결코 없다며 단발문신의 태백이 걸었던 그 외길이, 이제 두 길로 갈라진 갈림길이 된다.
갈림길이 시작된 후 다시 12대가 흐르고, 중원에 있던 우(虞)는 진(晉) 나라에게 멸망을 당한다. 진나라 헌공(獻公)이 괵(虢) 땅을 정벌하기 위해서이니 길을 빌려 달라고 한 요구에 응했다가 우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중원의 우나라가 망하고 다시 2대가 흐른 다음, 오랑캐 지역의 오나라가 흥성하기 시작한다. 태백에서 19대가 흘러 수몽(壽夢)이 왕위에 오르면서부터였다. 우나라의 멸망으로, 두 길로 나누어진 길이 다시 하나가 된 이후의 일이다.
오나라의 시조 태백이 아우 중옹과 함께 걸었던 길은 분명 외길이다. 하지만 그 외길은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외길이다. 오나라 태백이 걸은 길은 한 줄기 외길이지만, 태백의 마음 속에는 늘 두 갈래 갈림길이 나타났을 것이다. 갈림길과의 힘겨운 싸움의 결과가 ‘단발문신’이 아니었을까.
모르긴 해도, 올바른 이를 찾아 천하의 권력을 제대로 전하는 것만큼이나 권력의 힘을 거부하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태백이 자기 마음 속에서 늘 대면했던 갈림길은 결국 중원[中國]의 우(虞)와 변방[夷蠻]의 오(吳)로 나누어졌다. 중원의 우나라가 망하자 오랑캐 지역의 오나라가 흥기하며 본격적으로 중원을 향하기 시작한다. 이런 오나라의 역사를 보면 자꾸 묻게 된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과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 이 두 마음 모두 태백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하고 말이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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