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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 계찰(季札)의 삼양(三讓), 왕위를 세 번 사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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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13 조회20,7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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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는 수몽(壽夢)의 시대부터 군사력이 강해졌고, 중원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힌 중원의 여러 나라들에게 오나라의 등장을 알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수몽은 잘 알고 있었다. 왕위에 있던 25년 동안 수몽의 오나라는 초나라와 거듭 전쟁을 벌였고, 제나라의 재상 경봉(慶封)의 망명을 허용했다. 오나라는 더 이상 변방의 소국이 아니었고, 내일이 더 찬란할 나라였다.


수몽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 제번(諸樊),둘째 여제(餘祭), 셋째 여말(餘昩), 그리고 계찰이 막내였다. 수몽은 장남 제번이 아니라 계찰에게 왕위를 넘기고 싶었다. 계찰은 어질고 명민했다. 형제들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조차 수긍할 정도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계찰은 큰형 제번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끝까지 사양했다. 수몽도 뜻을 굽혔다.


수몽이 세상을 떠났다. 탈상(脫喪)한 다음 제번이 아우 계찰을 불러, 아버님의 유지이니 왕위에 오르라고 부탁한다. 주위 사람들마저 거들고 나섰다. 계찰은 도성을 떠나버린다. 홀로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산다. 제번이 재위 13년만에 세상을 떠나며 둘째 여제에게 왕위를 넘긴다. 이렇게 형이 동생에게 왕위를 넘기면 결국 계찰이 왕위에 오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제가 죽자 이번엔 셋째 여말이 왕이 된다. 여말도 재위 4년만에 세상을 뜬다. 이제 모두들 어쩔 수 없이 계찰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계찰은 끝내 사양하고 이번에는 아예 오나라를 떠나버린다. 아버지의 뜻을 사양하였던 첫 번째, 큰형 제번의 뜻을 사양하였던 두 번째에 이어 계찰은 세 번째 사양을 한다.


이제 고국마저 떠나는 계찰의 삼양(三讓)을 보노라면, 오나라 시조 태백이 떠오른다. 태백이 아우 계력에게 왕위를 양보한 다음, 그 계력이 다시 아들 문왕에게 양위하고, 문왕에 이어 무왕이 등극하자 주나라의 천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삼대가 지나자 천하를 얻게 되었듯이, 삼양(三讓)의 계찰이 고국 오나라에 새겨넣고 싶었던 것이 혹시 ‘천하를 아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중원 진출을 도모하는 오나라에 꼭 필요한 마음, 천하를 사양해도 좋을 만큼 큰 마음, ‘중원의 마음’.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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