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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한국사, 수능 시험 필수 과목 지정이 만능인가? - 국사 교육 논란, 교육 과정 개편이 근본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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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30 15:04 조회22,5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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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를 수학능력시험 필수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에 한국사 이외 사회 과목 교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통령에서부터 텔레비전 오락 프로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교육 강화를 외치고 있는 마당에 국사 이외 다른 사회 과목 교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는 것은 국사 교육 강화 방안이 교육 현장에서는 그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사 교육 강화를 위해서는 수학능력시험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단방약'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국사를 일시에 기사회생시킬 수는 있어도 여러 가지 합병증과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극약 처방이다. 한국에서 수학능력시험 개편은 교육 문제 해결의 마법의 요술봉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국사 교육 강화 문제 역시 그런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등학교 교육 과정 개편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이 순리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사 교육이 약화된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근본 원인은 이른바 9차 교육과정 개편에 있고, 사실 현 수학능력시험 체제는 현 교육 과정과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차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은 교육 과정 개편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9차 교육 과정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학습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과목을 세분화했다. 하지만 그것이 합리적이었는지,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

개편 당시를 보면, 지금은 한 과목이 줄었지만 지리 관련 과목이 무려 세 과목(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이나 되었고, 역사 관련 과목은 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로 세분했고, 나머지 사회 관련 과목은 다섯 과목으로 세분했다. 이렇게 학생들의 선택권 확대라는 이름으로 과목을 세분해 놓은 상태에서, 더구나 아직도 1960~70년대식으로 죽어라고 암기를 시키는 국사 과목을 학생들이 선택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많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 평가인 현 수학능력시험 체제에서 서울대학교가 국사를 필수로 지정하는 바람에 국사를 수학능력시험에서 선택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99.9퍼센트 수험생 입장에서는 바보 같은 일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과목 세분화로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이 확실하게 보장되고 학습 부담이 줄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생들의 선택권이 아니라 사회 과목 관련 교사들의 과목 담당권이, 나쁘게 말하면 교사들의 자리가 완벽하게 보장되었다. 이러한 개편은 심하게 말하면 사범 대학 출신자의 교직 진출, 그리고 각 전공 과목의 이권 보장을 위해 교과목을 잘게 쪼개서 공평하게 나누어 먹기 한 혐의가 짙다.

물론, 학령 인구 감소로 해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현재 사범 대학 졸업생 중 약 5퍼센트 정도만이 교직 사회에 진출하는 등, 사범 대학, 특히 사립 대학교 사범 대학이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에서 중·고등학교 교직 과정에 대한 사범 대학 교수들의 심정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범 대학 몇몇 학과의 경우, 그리고 일선 교단의 사회 과목 선생님들의 경우 생존의 문제가 사회 과목 개편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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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자면 국사 교육 강화는 국사 문제만으로는 만족스러운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셈이다. 국사를 필수로 지정하면 다른 사회 과목이 모두 죽어버리게 되고, 이는 사범 대학 관련 학과와 현직 교사들의 생존이 걸린 저항을 불러오는 것이 지금 한국 교육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계의 현실 때문에 국사 교육 강화 해법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위를 넘어 현실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학능력시험 개편이라는 단방약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행 수학능력시험 체제에서 국사를 필수로 지정하게 되면 수험생의 학습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더구나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내놓은 안대로, 국사를 필수로 하고 사회 탐구 두 과목을 그대로 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또 국사 이외 다른 과목은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게 되고, 많은 교사들과 사범 대학의 반발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기본 전제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첫째, 역사 교육도 강화하면서 현직 사회 과목 관련 교사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방법을 찾지 않으면 실패한다. 불행하지만 이것이 교육 현실이다. 둘째,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늘어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한국 학생들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불행하고 충분히 힘들다. 셋째, 지식 융합 시대에 맞게 학생들을 교육하는 사회 과련 과목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최종적으로는 교직 수요에 변화에 따른 교사 배출 구조의 획기적 변화, 즉 사범 대학의 과감한 구조 조정이나 사범 대학 체제의 폐지를 통한 교육대학원 체제로의 개편이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전제로 실현 가능한 중단기적 대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국사 교육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교육 과정 개편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사회 관련 과목 통합이 필요하다. 이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사회 관련 과목을 통합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다.

이를 위해 사회 과목을 역사, 사회 두 과목이나 윤리와 사상 등을 포함한 세 개 과목으로 통합해야 한다. 현행 사회 관련 과목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회 과련 과목이 세분화된 나라가 어디 있는가? 더구나 현행 교육 과정에서는 학생을 지식 절름발이로 만든다. 학생이 국사를 배웠다고 해도 세계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수 있다. 사회문화는 알지만 경제는 문외한일 수 있는 게 지금 교육 과정이다.

고등학생들이 폭넓은 지식을 배우고 다양한 지적 경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래를 설계하도록 과목을 통합해야 한다. 역사 과목만 하더라도 역사 관련 과목을 '역사'라는 한 과목으로 통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역사 교육을 과거 식으로 연도 달달 외우고 사사건건 시대 순으로 줄줄이 암기하는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역사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이 많아지고, 학생들은 역사를 지겨워한다.

역사 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 없이 역사 교육만 강화하는 것은 과거로의 퇴행이다. 미국 학생들은 역사의 의미를 배우고 역사 속 사람의 생활과 생각을 추체험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오직 사건만을 암기하는 식의 역사 교육은 한국 교육의 고질병 중의 하나다.

사회 과목을 통합하여 과목 수가 줄어들면 관련 교사들을 감축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통합 역사 과목이나 통합 사회 과목은 교사 한 사람이 한 학기 동안 모든 내용을 강의할 수가 없다. 여러 교사가 분담할 수밖에 없다. 현재 특정 사회 관련 과목을 50명의 학생이 수강할 경우, 과목이 통합된다면 200명이 수강하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교사는 통합된 과목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과목을 4주 간격 등으로 돌아가면서 관련 내용을 강의할 수가 있다.

국사 교육의 문제는 국사 교육만의 논리로 풀 수 없는 게 우리 교육의 현재다. 부작용이 우려되는 수학능력시험 개편이라는 단방약에 기대기보다는 우리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개편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융합의 시대, 통합의 시대를 살 우리 학생들이 통합적 지식을 구비하도록 교육 과정이 개편되길 기대한다.

한국사는 알지만 세계사와 경제는 모르는 문과생, 지구과학은 알지만 물리나 화학에는 까막눈인 이과생을 키워내는 것이 현행 고등학교 교육 과정이다. 세상은 문·이과 통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은 문·이과 사이에 철의 장벽을 치는 것도 모자라서 사회 과목 내에서, 과학 과목 내에서조차 통합과 융합을 차단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지금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이다.

역사를 모르는 인문대생, 화학과 물리를 배우지 않은 공대생이 대학에 넘쳐나는 게 지금 우리 현실이다. 국사 교육 강화 논란이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근본에서부터 재검하는 기회가 되고, 국사 교육 강화 여론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사족. 제발 국사란 용어 대신 한국사란 용어를 쓰면 안 되는가. 식민 잔재의 뿌리가 너무 깊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프레시안, 201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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