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불량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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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8-29 16:01 조회22,0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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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데 채소와 곡식은 왜 먹는가?” 여러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 육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할 때 가끔 듣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감각과 감정이 있다는 연구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스라엘의 어떤 생물학자는 식물이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기억도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식물의 고통까지 생각하면서 먹을 걸 골라야 한다면 선택할 만한 게 별로 없다. 채소는 물론이고 씨앗이 담긴 곡식도 피해야 한다. 씨앗 속에는 배아가 들어 있고, 배아에는 수분과 광선에 반응하는 싹틔우기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두 골라내면 남는 것은 씨를 빼고 먹는 과일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식물의 고통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나는 과일만 먹는다”고 대답한다고 해도 그가 만족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동물을 배려하려면 식물도 배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두 차이가 없다는데 왜 밥먹는 곳까지 와서 둘을 구분해 성가시게 하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짐승의 고기를 먹는 그에게 채식을 한다는 사람은 꽤 성가신 존재다. 그들은 음식 먹을 곳의 선택 가능성을 좁힐 뿐만 아니라, 먹는 고기가 어느 장소에서 죽임을 당한 것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육식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니 고기 먹는 그 자신을 비난하지도 않았는데 식물도 생각하라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육고기를 적게 먹거나 먹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생각해도 그렇고, 인류의 석유와 가스 중독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정으로 감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식물을 생각한다면 육식을 줄여야 한다. 우리가 먹는 육고기는 모두 식물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고, 육고기 1㎈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칼로리를 가진 식물을 희생해야 하고, 그 결과 육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으면 식물을 먹어서 에너지를 취할 때보다 훨씬 많은 식물에 고통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과 관련된 일에 항상 예민하게 반응한다. 배추나 마늘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적은데도 그것들의 값이 오르면 정부에서 긴급대책을 내놓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채식하는 사람을 만나면 식물의 고통을 들이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도 아마 이를 알고 있기에 불량식품을 4대악에 포함시키고 반드시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량식품은 4대악’이라는 대통령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못하는 사람이나 그 약속을 지지하는 사람 모두 어렸을 때 불량식품을 먹으며 행복해했던 경험이나 탈이 났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그 공약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불량식품은 정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좁게는 초등학교 앞 아이들의 군것질거리가 불량식품일 수 있다. 아주 넓게 보면 동물과 식물에 고통을 가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식품, 과일을 제외한 모든 식품이 불량식품이다. 청소년 시절 햄버거를 먹고 배탈이 나서 앓고난 후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에게는 육고기가 불량식품이고, 미국의 아이스크림 재벌 배스킨라빈스의 유산 상속자인 존 라빈스에게는 우유도 불량식품이다. 나에게는 콜라가 불량식품이다. 10대 때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가서 빵과 콜라를 몇 번 사먹은 후 처음으로 이가 썩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식물의 고통을 생각하라는 주장이나 불량식품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는 꽤 괜찮은 것일 수 있다. 먹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넘어 깊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이 불량식품이라는 말도 대통령 공약의 긍정적인 결과다. 앞으로 불량식품과 관련된 넓고 깊은 토론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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