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균] 주사위 -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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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02 17:25 조회20,6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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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보낸 선물이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 상자를 여니, 뜻밖에도 모서리가 잘 다듬어진 흰색 주사위 하나가 전부였다. 메시지도 없었다. 대체 이런 선물을 지금 왜 내게 보냈을까.
새삼 주사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여섯 면의 사각형마다 까만 점이 하나에서 여섯 개까지 박혀 있는 주사위. 가만히 보니 까만 점은 우주를 떠도는 혹성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이한 선물의 의도가 궁금하여 며칠 동안 주사위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면서 시도 때도 없이 주머니에서 주사위를 꺼내 던져본 것은 물론이다. 매번 예상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오는 것, 바로 이게 주사위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원시적인 수준의 세계 어느 고대 문화권에서나 거의 유사한 형태의 주사위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조금 놀랍다. 하나같이 주사위를 만드는 재료는 동물의 뼈나 상아, 조약돌이나 자두나 복숭아씨 같은 단단한 사물이었다. 이 일관성에서 단순한 주술성을 넘어선 재료들의 무의식이 감지된다.
`뼈`와 `씨`라는 재료는 주사위가 표현하는 우연성을 존재의 중핵으로 이해했다는 뜻이 아닐까. 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던져진(점친) 운수는 깨어질 수 없다는 믿음 같은 게 감지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운명에 대한 체념만을 읽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물론 얼마든지 주사위의 무의식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는 있다. 존재의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양자역학을 비판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반면 모차르트는 주사위를 던지는 즉흥성으로 `우연성의 음악`을 창조했다. 루비콘 강을 앞에 두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역사적인 발언은,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과 결단의 상황을 드러낸다. 결정적 순간에도, 우연성을 부정할 때도, 우연성을 전위로 재탄생시킬 때도 이 사물은 중요한 메타포였다. 어떻게 말하든 간에 주사위의 정육면체 표면에는 불확실성뿐만이 아니라 `결정`이라는 필연성이 동시에 내장되어 있다.
인간의 의지력에 대한 위대하고도 혹독한 니체의 실험도 실은 주사위를 매개로 한 것이었다. 그는 항상 `네 운명의 주사위를 사랑하라(Amor fati)`고 가르쳤다. 니체에게서 이 사물은 체념과 포기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내던져진 생을 스스로 의미화하고 긍정하는 능동성의 윤리를 표현한다.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드러난 주사위 숫자가 지시하는 생의 현재를 긍정하고 즐겨라! 불확실성이란 그 자체가 또 다른 길로 난 생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닌가.
함돈균 고려대 철학과 연구교수
(매일경제, 2013.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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