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필] 제나라 양공(襄公)의 최후, 제후의 시해극(弑害劇)이 완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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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24 조회21,8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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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 임금을 시해한 사건은 무척 많지만, 제나라 양공의 죽음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제후의 시해 사건에 필요한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의 개연성은 충분했고 등장인물들의 역할에 대한 동기부여도 분명했다. 거기다 극적인 긴장감마저 가미되었다.
양공은 여동생과 추문에 휩싸였고 이웃나라 임금의 살해를 교사(敎唆)했다. 사촌 동생의 지위를 강등시켜 원망을 쌓았고 신하들과도 약속을 저버려 반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양공을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기저기 많았다.
양공의 부친 희공은 조카 공손무지(公孫無知)를 무척이나 아껴 태자인 양공과 대우를 동등하게 했다. 태자 시절에 양공은 이런 공손무지를 미워했고 자주 다퉜다.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양공은 공손무지가 누리던 혜택을 박탈하고 멀리 내쫓았다.
연전에 양공은 연칭(連稱)과 관지보(管至父)를 변방으로 보내어 지키게 했다. 외가 익을 때에 보내며 “다시 외가 익을 때 교대시켜 주겠다”(瓜時而往曰 及瓜而代)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두 사람이 공손무지를 만나 반역을 모의하는 빌미가 되었다.
여기다 궁성 안에서 반역을 도울 공범이 함께 한다. 양공에게는 총애를 받지 못하는 후궁이 있었는데 연칭의 사촌이었다. 거사가 성공하면 공손무지와 결혼시켜 주겠다며 회유했다. 이제 다음 임금이 될 사람, 병력을 갖춘 반란 세력, 궁궐 내부의 동조자까지 모두 갖추어져 졌다.
드디어 결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양공이 사냥 나갔다가 발을 다쳐 병상에 눕게 되었다. 8년 전 양공이 죽였던 팽생(彭生)이 나타났다는 말에 놀라, 발도 다치고 신발도 잃어버렸다. 사람 모양의 큰 멧돼지가 나타났고,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팽생이다!”고 소리쳤다. 반란 세력이 꾸민 일인지 실제 팽생의 유령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반란 세력이 궁궐에 들이닥치던 순간, 양공은 사냥터에서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오라며 시종 비(費)에게 채찍질을 했다. 도망치던 비는 궁문에서 연칭 일행과 마주친다. 자기 등의 채찍 자국을 보이며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고는, 자신이 먼저 들어가 안을 정탐한 다음 문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되돌아간 비는 양공을 숨기고 나와서 반란 세력과 싸우다 궁문에서 죽는다. 또 다른 시종 석지분여(石之紛如)는 섬돌에서, 맹양(孟陽)이란 시종은 양공인양 변장한 채 용상에서 죽는다. 누군가에게는 죽여 마땅한 임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목숨 바쳐 지켜야 할 주군이었다. 채찍질하며 자신을 학대한 그런 주군이었음에도 말이다.
연칭 일행은 양공을 찾아 궁궐을 뒤지다가 문 아래로 드러난 양공의 발을 발견하고 이내 양공을 살해한다. 결국 양공은 다친 발 때문에 죽은 것인데, 그렇지만 다친 발만으로는 무엇인가 석연찮다. 혹시 양공이 숨어 있던 문 앞에 잃어버린 신발이 놓여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냥터에서 잃어버린 양공의 신발을 죽은 팽생이 그 앞에다가 가져다 둔 것이라 하면 어떨까.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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