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균] 인터넷-바벨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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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18 13:06 조회20,7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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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영원한 순례자가 도서관을 스쳐 지나갔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수 세기 후에 동일한 책들이 동일한 무질서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도서관을 다시 지나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무질서의 무한한 반복은 늘 질서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도서관의 서가는 무한하다. 서가와 서가 사이에는 무한한 책장이 존재한다. 마치 장자의 `무한`처럼 도서관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다. 책장에 꽂힌 임의의 책을 펼치면 무한한 책장이 펼쳐진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보르헤스는 이를 `바벨의 도서관`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도서관 자체가 모든 책들의 암호인 동시에 모든 책들에 대한 해석이 되는 `단 한 권의 책`이라고 말한다.
바벨의 도서관의 수수께끼의 핵심은 `무질서의 무한한 반복`이 형성하는 `질서`에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사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질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어느 시점에서 `규정된` 무질서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현재가 존재의 유일하고 완결된 형식(질서)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무질서의 무한한 반복`이란 `잠정적 질서`에 가해지는 `가변성` 그 자체다.
`바벨의 도서관`은 정보(지식)의 가변성이 무한히 지속되는 방식으로, 무질서가 반복되는 정보 세계의 존재 형식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가변적 정보는 잠정적인 `질서`, 즉 `책`이 된다. 책은 실시간으로 수정되는 정보의 가변성으로 인해 책장과 책장 사이에 다시 무한한 정보를 생산한다. 그리고 책들은 서로를 지시하고 인용하며 참조할 수밖에 없는 정보의 속성으로 인해 다른 서가의 책들과 만난다. 그것은 이 도서관이 정보들이 무한 `링크(link)`된 `동일한 책들`의 세계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은 모든 책들의 암호이면서 해석인 `한 권의 책`이 된다.
보르헤스가 반 세기 전에 실재한다고 주장한 `바벨의 도서관`은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한 권의 책`이 `발견`됨으로써 실증되었다. 서양인들은 태초에 `로고스(logos)`가 있었다고 말한다. `말(정보)`이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질서`란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의 도서관이기도 한 인터넷은 반대로 노자나 장자처럼 말한다. 질서의 근간은 무질서이며, 질서는 무질서의 잠정적 형식일 뿐이다. 영원히 회귀하는 것은 질서가 아니라 무질서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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