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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인권이라는 말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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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5-29 15:50 조회21,7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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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오늘날에는 휴먼 라이츠가 ‘인간의권리’로 완전히 일반화되어 굳어졌지만 필자는 이 말을 다시 번역할 수 있으면 어떤 표현이 좋을까 자문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의권’(義權)이 비교적 그것에 가까운 번역이 아니겠는가 상상한다.

 


인권 오디세이, 이 여정을 인권이라는 말의 유래를 찾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인권과 유사한 인도적 정신은 세계 여러 문명권과 종교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인간의 ‘권리’라는 개념은 서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서양에서 처음부터 ‘휴먼 라이츠’(human rights)라고 한 건 아니고, 처음에 ‘자연권’이라 부르다 나중에는 ‘사람(남성)의 권리’라고 쓴 적도 있었다. 토머스 페인이 1791년에 내놓은 <인권>의 원제목은 <라이츠 오브 맨>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도 남성형 ‘사람’이 쓰였다. 중립적으로 ‘휴먼’이라는 말은 누가 맨 처음 썼을까? 여러 주장이 있지만 1849년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적 불복종>에 ‘휴먼 라이츠’가 나오는 건 확실하다. “사람을 부당하게 투옥하는 국가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진정한 장소는 감옥뿐”이라는 유명한 구절 직전에 등장한다. 2차대전 뒤 유엔헌장에 드디어 ‘휴먼 라이츠’가 공식적으로 포함되었고 그것이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으로 구체화되었다.

인간(휴먼)이라는 말보다 권리(라이트)라는 말은 더 복잡하다. 서양 사람에게도 라이트 개념은 어렵다. 여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동아시아 사람에게 라이트는 더 어렵다. 번역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덧씌워진 탓이다. 영어로 라이트(right), 네덜란드어로 레흐트(regt), 독일어로 레히트(recht), 프랑스어로 드루아(droit)라는 이 말은 고대로부터 객관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어떤 상태를 뜻하는 어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 질서, 곧 선이 이기고 악이 단죄되는 상태를 ‘디카이온’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세 이후 라이트의 의미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마땅히 행사하고 요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어떤 특별한 자격이라는 주관적 의미가 추가되었던 것이다. 14세기의 오컴 혹은 17세기의 홉스·로크·흐로티위스(그로티우스)가 라이트를 그런 식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보면 라이트가 인간 행위의 정당성과 그 한계, 그리고 제도와 정부의 구조 및 형태를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 인간을 어떻게, 어느 정도나 대우하느냐를 정하는 존재론적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런데 독일어나 프랑스어와는 달리 영어 ‘라이트’에는 ‘법’이라는 의미가 없다.


차별금지를 반대하는 이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식민지 주민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도 그것이 인권과 부합한다고 착각했던 허위의식과 연결된다.


‘라이트’의 뜻이 이처럼 여러 갈래지만 워낙 핵심적인 개념이었으므로 동아시아에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때 이 말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서구문화 수입에 국운을 걸었던 일본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동서양 사이의 크고 작은 오해와 충돌이 끊이지 않던 상황에서 이질적인 외래 문물을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좋은 예가 있다. 1862년 요코하마의 나마무기라는 마을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던 두 일행 사이에 시비가 붙어 일본인이 영국 상인을 찔러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제국의 기세가 등등했던 영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에 공식적인 배상을 요구했고 10만파운드(현 시세로 약 1000억원 이상)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도 모자라 다음해 가고시마에 함포공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여담이지만 그로부터 몇년 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막부의 고위 인사가 “아, 또 물어줘야 하는가!”라고 장탄식을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서양 사람을 해쳤다 하면 사무라이 짓이거니 하고 여기던 때였으니 말이다. 서로 생소한 문명의 만남이 얼마나 큰 장벽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은 철저하고 광범위한 번역에 몰두했는데, 메이지 시대의 번역작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라이트’ 단어의 번역이 특히 어려웠음을 지적한다.


그 시대에 나왔던 여러 사전을 보면 라이트가 무척 다양한 한자어로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엔 염직(廉直) 또는 정직이라 하다, 아예 음역으로 표시하기도 했고, 그다음엔 도리·당연·면허·권 등으로 옮겼다. 그 뒤 진직(眞直)·권의(權義)·공평·공도(公道)·진실·조리(條理)·권세·통의(通義) 등 요즘엔 잘 쓰지 않는 난해한 단어들이 여럿 등장해 서로 겨루게 된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권리(權利)라는 말은 1885년 처음으로 사전에 나타난다. 라이트를 덕권(德權)·천권(天權)·법권(法權)·권리 등의 의미가 섞인 복합개념으로 인식한 것이다. 같은 해 출간된 또 다른 사전에서는 권리(權理)라는 번역어가 제시되기도 했다. 결국 ‘권리’(權利) 혹은 ‘권’이 라이트의 번역어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말 역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원래 도덕적이고 반권력적이고 장중한 어감을 가진 ‘라이트’ 개념이 권력과 이익과 힘의 느낌을 주는 ‘권리’로 번역되면서 라이트의 본뜻이 왜곡되어 전달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리’라는 번역어가 1880년대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최경옥의 설명을 따르면, 처음에는 <실록>과 같은 공식문헌에서 조금씩 사용하다 1890년대 들어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민소학독본>에 “칭호는 각각 다르나 상대하는 권리는 차등이 없느니라”라는 표현이 나오고, <서유견문>에도 권리란 말이 등장한다. 1896년 <독립신문>에는 “님군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요, 백성에게 권리를 주는 것이니”라는 표현도 보인다. 오늘날에는 휴먼 라이츠가 ‘인간의 권리’로 완전히 일반화되어 굳어졌지만 필자는 이 말을 다시 번역할 수 있으면 어떤 표현이 좋을까 자문하곤 한다. ‘정당하고 옳다’는 의미와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뜻이 잘 배합된 어떤 새로운 말이 없을까? 개인적으로 ‘의권’(義權)이 비교적 그것에 가까운 번역이 아니겠는가 상상한다. 이 질문은 단순히 탁상공론이 아니다. 실제로 인권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라이트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을 들어보자.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믿는 쪽에서는 그 누구도 이유 없이 차별받아선 안 되는 것이 인권의 원칙이라고 본다. 그런 입장이 정당하며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차별금지가 정당하고 옳기 때문에, 당연히 차별받는 사람들이 차별금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은 이유 없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는 원칙 자체를 아주 협소하게 해석한다. 물론 이들이 모든 차별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차별받지 말아야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나 행동만이 차별금지 원칙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남한 체제를 비판한다고 의심되는 사람은 애초 차별금지 원칙을 적용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차별을 가하는 게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마찬가지 논리로, 동성애 지향을 가진 사람 역시 애초 차별금지 원칙을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 차별을 받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이런 식의 선별적 가치관은 원칙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고 옳다’라는 인권의 기본 전제에 어긋나는 일이다. 차별금지를 반대하는 이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식민지 주민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면서도 그것이 인권과 부합한다고 착각했던 허위의식과 연결된다. ‘라이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 권리 운운하는 건 이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권운동에서도 라이트에 내재된 두 측면이 동시에 발현되곤 한다. 첫째, ‘정당하고 옳은’ 대상이나 행위는 계속 발견·발굴되므로 인권운동은 필연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인권을 윤리적인 어떤 절실한 포부로 이해할 때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불의와 비정상과 억압을 무너뜨릴 만병통치약으로 인권을 호명하려는 열망이 끊임없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둘째,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자격’으로서의 인권에서는 입법화와 제도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생긴다. 어떤 근거로 주장하는지, 그 요구를 들어줄 의무를 지닌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규정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권리의 객관적 규범과 주관적 요구자격의 결합, 이 점이 인권 개념을 여타 인도적 개념들과 구분하는 핵심이다. 이러한 인권의 발전 과정을 이모저모 살피는 여행, 그것이 인권 오디세이의 올레길이 될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3.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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