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 [명저 새로 읽기] 이남인 '후설과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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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8-05 17:02 조회37,3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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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현재성을 잃은 현상학에 ‘운동성’ 제시
인문학적 앎의 현재성(actuality)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실되기도 하고 다시 획득되기도 한다.
어떤 앎이든 시대의 산물이기에 그 의의가 동시대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시대의 일회적 상황이 해소된 듯 보인 후대에도 그 앎이 다시금 현재적 의의를 획득하는 것은 왜일까?
그 앎이 시대와 역사를 초월한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면서 심오한 사유를 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 앎이 기획되고 제시되었던 특정 시대의 일회적 상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때문일 터이다.
즉 그 앎이 비판적으로 대결하려 했던 그 시대 앎의 문제적 패러다임과 그 정치·사회·문화적 영향이 여전히 인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오래된 앎의 현재성이 다시 획득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세기 전환기에 후설로부터 시작된 현상학의 현재성은 이런 맥락에서 다시금 음미되어야 한다.
물론 현상학은 잊혀진 철학 분과이기는커녕 20세기 철학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연구분야로 이어왔다. 전 세계적으로 현상학 연구자 모임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전문적 연구를 심화시켜왔고, 대학 철학과에 현상학 전공의 교수가 재직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후설 이래 현상학은 현대 철학의 유력한 분과로서 현재성을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설의 현상학이 ‘현상학 운동’이라 지칭되었다는 맥락에서 보자면 현상학의 현재성은 상당히 망실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현상학 연구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그 바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폐쇄적 언술을 생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상학 연구가 애초에 내장하고 있었던 ‘운동’은 일실될 수밖에 없다.
현상학이 19세기를 통틀어 철학 분야만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지각과 반성 활동을 지배하고 왜곡하던 과학-기술적 패러다임에 대한 급진적 비판 운동이었음을 상기한다면, 현재 과도하게 전문화되어 폐쇄적 언술을 생산하면서 현재의 일상을 여전히 지배하는 과학-기술 패러다임 비판을 소홀히 하는 현상학계의 지식 생산 방식은 현상학의 운동성을 망실하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설과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한길사)은 매우 반가운 저서이다. 이미 현상학 연구에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자인 이남인 교수는 꾸준히 한국어로 된 현상학 연구서를 출간해온 바 있는데, 이번에 출간된 저서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과 후설의 후기 현상학 사이의 친연성을 상세히 분석하고 논증함으로써 현상학이 정적인 초월론 철학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무한성과 애매성에 주목하면서 과학-기술 패러다임을 비판하려는 실천적 의의를 가진 철학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남인 교수가 이 저서에서 현상학의 현재성이 현재에도 일상을 지배하는 과학-기술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임을 선명하게 내세우는, 이른바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현상학 연구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현상학 연구의 전문 영역에서 메를로-퐁티와 후설의 영향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기존 연구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제시하려 한다. 그 분석은 후설 자신이 현상학 연구를 심화시키면서 부단히 자기 비판과 변화를 추동했던 다면적 인물임을 전제로 한 위에서, 기존 연구가 후설의 그런 다면성을 무시한 채 일면적으로 특정 시기의 연구를 특화시킴으로써 메를로-퐁티와의 차이 혹은 동일성을 주장해왔음을 비판한다.
이 저서가 전문연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폐쇄적 언술로 그치지 않고 현상학의 운동성을 현재적 의의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즉 현상학이란 정적인 철학 연구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문제화하려는 생활세계처럼 변화무쌍한 자기 혁신의 앎의 체계임을 저자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해석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디 이런 현상학의 비판적 운동성이 인간의 인식능력과 세계의 존재구성을 획일화하고 왜소화하여 ‘팩트물신주의와 정답주의’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언설공간 비판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경향신문, 2013. 7.26.)
인문학적 앎의 현재성(actuality)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실되기도 하고 다시 획득되기도 한다.
어떤 앎이든 시대의 산물이기에 그 의의가 동시대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시대의 일회적 상황이 해소된 듯 보인 후대에도 그 앎이 다시금 현재적 의의를 획득하는 것은 왜일까?
그 앎이 시대와 역사를 초월한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면서 심오한 사유를 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 앎이 기획되고 제시되었던 특정 시대의 일회적 상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때문일 터이다.
즉 그 앎이 비판적으로 대결하려 했던 그 시대 앎의 문제적 패러다임과 그 정치·사회·문화적 영향이 여전히 인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오래된 앎의 현재성이 다시 획득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세기 전환기에 후설로부터 시작된 현상학의 현재성은 이런 맥락에서 다시금 음미되어야 한다.
현상학이 19세기를 통틀어 철학 분야만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지각과 반성 활동을 지배하고 왜곡하던 과학-기술적 패러다임에 대한 급진적 비판 운동이었음을 상기한다면, 현재 과도하게 전문화되어 폐쇄적 언술을 생산하면서 현재의 일상을 여전히 지배하는 과학-기술 패러다임 비판을 소홀히 하는 현상학계의 지식 생산 방식은 현상학의 운동성을 망실하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설과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한길사)은 매우 반가운 저서이다. 이미 현상학 연구에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자인 이남인 교수는 꾸준히 한국어로 된 현상학 연구서를 출간해온 바 있는데, 이번에 출간된 저서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과 후설의 후기 현상학 사이의 친연성을 상세히 분석하고 논증함으로써 현상학이 정적인 초월론 철학이 아니라 생활세계의 무한성과 애매성에 주목하면서 과학-기술 패러다임을 비판하려는 실천적 의의를 가진 철학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남인 교수가 이 저서에서 현상학의 현재성이 현재에도 일상을 지배하는 과학-기술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임을 선명하게 내세우는, 이른바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현상학 연구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현상학 연구의 전문 영역에서 메를로-퐁티와 후설의 영향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기존 연구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제시하려 한다. 그 분석은 후설 자신이 현상학 연구를 심화시키면서 부단히 자기 비판과 변화를 추동했던 다면적 인물임을 전제로 한 위에서, 기존 연구가 후설의 그런 다면성을 무시한 채 일면적으로 특정 시기의 연구를 특화시킴으로써 메를로-퐁티와의 차이 혹은 동일성을 주장해왔음을 비판한다.
이 저서가 전문연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폐쇄적 언술로 그치지 않고 현상학의 운동성을 현재적 의의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즉 현상학이란 정적인 철학 연구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문제화하려는 생활세계처럼 변화무쌍한 자기 혁신의 앎의 체계임을 저자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해석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디 이런 현상학의 비판적 운동성이 인간의 인식능력과 세계의 존재구성을 획일화하고 왜소화하여 ‘팩트물신주의와 정답주의’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언설공간 비판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경향신문, 2013.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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