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연료전지는 대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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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8-14 15:27 조회24,0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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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센터 게시판에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포스터가 붙었다. 2014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석유 50만t에 해당하는 전기를 생산하겠다고 한다. 국제 표준단위로 나타내면 약 48억㎾h를 만들어내고 절약하는 것이다. 이 양은 큰 원전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전기의 약 60%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내년 말까지 똑같은 양의 전기를 절약하겠다고 하니 계획대로만 되면 ‘원전 하나 줄이기’는 성공한다. 2012년 이 계획이 발표됐으니 2년 만에 외부에서 공급받는 전기의 약 10%를 줄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대단한 성과를 거두는 셈이다.
48억㎾h를 만들기 위해 이용하려는 신재생에너지에는 태양광과 소수력도 있지만, 그 중 3분의 2는 연료전지라는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다. 그런데 연료전지는 정부의 정의에 따르면 ‘신에너지’에 속하고 많은 사람이 ‘신재생에너지’라고 부르지만, 순수한 재생가능 에너지는 아니다. 그것은 수소나 천연가스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시도 연료전지를 돌려서 전기를 만들 때 생산되는 에너지보다 훨씬 많은 양의 도시가스를 소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울시에서 연료전지를 설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조수천억원이다. 이토록 많은 돈을 투입하고 게다가 화석연료인 도시가스를 사용하면서 만든 전기를 가지고 원전을 줄이겠다는 발상은 현재의 단기적 성과만을 위한 것이지 미래지향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전 한 개의 건설비는 2조원을 조금 넘는다. 서울시의 연료전지 설치비가 원전 반개의 건설비와 같은 셈인데, 이 연료전지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원전 반개의 40%밖에 안된다. 화석연료를 투입하면서도 경제적 효율은 원전의 절반에도 크게 미달하는 계획으로 원전 줄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연료전지는 수십년 전부터 종종 미래의 에너지 기술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자동차, 가정, 발전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됐고 그동안 아주 많은 연구개발비도 투입됐다. 그러나 아직도 연료전지는 경제성이 없는 틈새 기술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다른 기술에 밀려 보편화될 전망이 별로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반면 같은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연료전지와 마찬가지로 전기와 열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가스 열병합발전은 개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보편적인 기술이 됐다. 건설비도 연료전지의 5분의 1에 훨씬 못 미친다. 규모도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다양하다.
‘원전 하나 줄이기’라는 서울시의 계획은 참신했지만, 그것을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하겠다는 발상은 큰 실수였다.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는 원자력 진영에서 정의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각종 폐기물도 들어가고 심지어는 석탄가공연료도 들어간다. 수소도 신재생에너지다.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원자력 진영에서 개발하고 있는 수소생산 원자로도 신재생에너지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열병합발전소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리라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가스 열병합발전은 신재생에너지가 아니고 연료전지가 신재생에너지에 속하기 때문에 연료전지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 열병합발전이 훨씬 경제적이고 보편적인 기술인데도 연료전지를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원자력 진영을 돕는 꼴이 될 수 있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계획이 2014년까지 성공하려면 신재생에너지 같은 말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더라도 아주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고 유연한 기술이라면 채택해야 한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정직하게 설명을 해주면 된다. 그러면 시민들은 오히려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신재생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이를 감추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환영할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3.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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