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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스냅백 - 스타일이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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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16 14:08 조회19,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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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스타일(style)`이란 말은 `옷 입는 방식`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본래 스타일은 `펜(stylos)`이라는 뜻이었다. `문체`라는 뜻도 여기에서 비롯됐으며, `양식`이란 뜻까지 포괄한다. 요즘은 스타일 숭배 시대지만, 예전에는 스타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을 `폼 잡는다`는 말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올해 핫한 패션 아이템인 `스냅백(snapback)`은 어쩌면 `폼 잡는다`는 말에 부합하는 사물일지도 모르겠다. 챙이 살짝 밑으로 구부려지는 일반 모자와 달리 이 모자는 챙이 짧으며, 챙이 시선과 평평하거나 오히려 위로 꺾인다. 뒤에 똑딱이 단추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 사물의 핵심은 챙에 있다.


이 `폼`의 특징은 다른 모자들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야구모자는 챙을 밑으로 구부려 써야 제 맛이다. 이때 눈은 챙의 그늘로 약간 가려지며, 타인과 나 사이에는 다소 불공평한 시선의 메커니즘이 생긴다. 길고 `각 나오는` 챙을 가진 경찰관 모자도 있다. 이 챙은 제도의 완강함과 규율에 대한 복속을 상징한다. 반면 스냅백 챙은 `빳빳`하다. 이 빳빳함은 완강함이라기보다는 젊음의 고유한 에너지의 표현이다. 짧은 챙은 `까칠한` 비타협성을 웅변하는 듯하다.


스냅백은 앞뒤를 거꾸로 돌려 쓰거나, 챙을 위로 꺾어 올려 썼을 때 스타일의 진가가 드러난다. 거꾸로 쓸 때, 이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폼은 달리는 자세다. 그는 앞만 보고 달리지만, 시선을 멀리 던지지는 않는다. 너무 멀리 삶을 전망하며 `계산`하는 것은 스냅백 주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폼이란 말이다. 챙이 거꾸로 꺾여 올려진 스냅백 주인은 야구모자 주인처럼 자기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가진 건 없지만 `떳떳함`이야말로 스냅백 스타일이다. 위로 올라간 챙만큼이나 시선은 더 개방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스타일에서 `삐딱이`를 볼 수도 있겠지만, 개방된 시선이 더 많은 것을 향해 열려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스타일은 `폼`이고, 폼은 정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질은 `폼`이라는 형식의 옷을 입고서만 나타난다고 보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폼을 잃지 말자.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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