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추악한 정부와 전교조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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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16 14:14 조회19,5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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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대립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도 다층적으로 발생한다. ‘100% 대한민국’을 공언한 대통령 아래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런 대립에서도 정부가 국민을 도덕적 딜레마와 심리적 고통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 정부는 추악한 것인데, 지금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대해 그런 것 같다.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는 해직자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고쳐 해직자를 노조에서 퇴출하라고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전교조의 법적 노조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법외노조와 규약개정 사이의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이런 강요에 깃든 노림수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규약을 개정하지 않았다고 법적 지위를 박탈당하면 전교조는 싸우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언론 지형에서라면 정부는 전후 맥락을 잘라내고 전교조의 투쟁을 오후 5시에 ‘칼퇴근’하고 기초연금 논란 따위와는 무관하게 두둑이 연금을 챙기는 정년보장 정규직들의 이기적인 행태로 몰아갈 자신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좌빨’ 전교조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주장도 되살릴 것이다. 그렇게 정부와 갈등이 격렬해지면, 충성심이 약한 노조원들부터 점차 떨어져 나가 전교조는 약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적 곤경 때문에 규약을 개정하면 전교조는 자기부정에 이른다. 해직자의 노조원 자격 박탈은 연대를 원리로 하는 노조의 존재 이유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해직자는 노조를 위해 활동하다가 그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해직자를 보듬지 않는 조직은 대의를 상실하며, 결국 제대로 작동할 수도 없게 된다. 정부의 의도가 관철되면 전교조는 이래도 저래도 조직 약화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적 대립선에 있는 국민이라고 해서 그들을 도덕적 곤경으로 내모는 정부는 추하고 비열할 뿐이다. ‘노조의 자기부정’이라고 했지만, 그게 뜻하는 바는 결국 동료에 대한 배신이다. 어떻게 그런 것을 정부가 국민에게, 더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가? 고분고분 규약을 고친다면 전교조 교사들이 어떻게 떳떳이 교단에 설 수 있겠는가?
전교조는 오늘부터 사흘간 규약개정 여부를 조합원 총투표에 부친다. 전교조 지도부는 규약개정 거부를 조합원의 총의로 확립함으로써 투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투표 결과가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결과가 규약개정 쪽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고약하게도 그 경우 전교조 규약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관련 조항이 달라 전교조는 법적 지위 유지라는 ‘실리’마저 챙기기 어렵다. 전자는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으로 규약을 개정할 수 있게 하지만, 후자는 과반수 투표에 3분의 2가 찬성해야 규약을 개정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총투표 결과가 과반수 찬성이지만 3분의 2에는 못 미친다면(3분의 2를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교조는 규약을 개정해야 하지만, 정부는 법조항을 근거로 들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도덕적 자부심과 실리 모두를 잃는 이런 사태는 전교조에는 감당할 수 없는 대혼란이다.
만일 규약개정이 부결된다면,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어 투쟁에 나서게 될 텐데, 현재로서는 앞서 지적한 이유 때문에도 이 길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상황이다. 합법화 이후 전교조가 정부와 맞섰던 투쟁 가운데 사립학교법 개정 투쟁을 제외하면 필자가 공감한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와 단호하게 그리고 잘 싸워주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단결권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이 걸린 싸움이어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교사들의 인격적 통합성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10. 16.)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는 해직자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고쳐 해직자를 노조에서 퇴출하라고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전교조의 법적 노조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법외노조와 규약개정 사이의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이런 강요에 깃든 노림수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규약을 개정하지 않았다고 법적 지위를 박탈당하면 전교조는 싸우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언론 지형에서라면 정부는 전후 맥락을 잘라내고 전교조의 투쟁을 오후 5시에 ‘칼퇴근’하고 기초연금 논란 따위와는 무관하게 두둑이 연금을 챙기는 정년보장 정규직들의 이기적인 행태로 몰아갈 자신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좌빨’ 전교조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주장도 되살릴 것이다. 그렇게 정부와 갈등이 격렬해지면, 충성심이 약한 노조원들부터 점차 떨어져 나가 전교조는 약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적 곤경 때문에 규약을 개정하면 전교조는 자기부정에 이른다. 해직자의 노조원 자격 박탈은 연대를 원리로 하는 노조의 존재 이유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해직자는 노조를 위해 활동하다가 그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해직자를 보듬지 않는 조직은 대의를 상실하며, 결국 제대로 작동할 수도 없게 된다. 정부의 의도가 관철되면 전교조는 이래도 저래도 조직 약화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적 대립선에 있는 국민이라고 해서 그들을 도덕적 곤경으로 내모는 정부는 추하고 비열할 뿐이다. ‘노조의 자기부정’이라고 했지만, 그게 뜻하는 바는 결국 동료에 대한 배신이다. 어떻게 그런 것을 정부가 국민에게, 더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가? 고분고분 규약을 고친다면 전교조 교사들이 어떻게 떳떳이 교단에 설 수 있겠는가?
전교조는 오늘부터 사흘간 규약개정 여부를 조합원 총투표에 부친다. 전교조 지도부는 규약개정 거부를 조합원의 총의로 확립함으로써 투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투표 결과가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결과가 규약개정 쪽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고약하게도 그 경우 전교조 규약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관련 조항이 달라 전교조는 법적 지위 유지라는 ‘실리’마저 챙기기 어렵다. 전자는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으로 규약을 개정할 수 있게 하지만, 후자는 과반수 투표에 3분의 2가 찬성해야 규약을 개정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총투표 결과가 과반수 찬성이지만 3분의 2에는 못 미친다면(3분의 2를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교조는 규약을 개정해야 하지만, 정부는 법조항을 근거로 들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도덕적 자부심과 실리 모두를 잃는 이런 사태는 전교조에는 감당할 수 없는 대혼란이다.
만일 규약개정이 부결된다면,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어 투쟁에 나서게 될 텐데, 현재로서는 앞서 지적한 이유 때문에도 이 길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상황이다. 합법화 이후 전교조가 정부와 맞섰던 투쟁 가운데 사립학교법 개정 투쟁을 제외하면 필자가 공감한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와 단호하게 그리고 잘 싸워주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단결권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이 걸린 싸움이어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교사들의 인격적 통합성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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