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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정치시장의 자유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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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5-29 15:59 조회21,6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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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집합적 결정은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회의 다수를 점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이 소수에 불과한 강자들의 이익에 압도당하는 상황이 만연하여 그 둘 간의 불평등이 계속 심화·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대로 국가가 운영돼왔다면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건설 등은 진즉에 이루어졌어야 마땅한 일이다. 요즘 ‘새 정치’ 논의가 무성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정치, 그리하여 민의 반영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새 정치의 구현을 위해선 ‘정치시장’을 보다 자유롭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정치시장은 유권자라 불리는 소비자들과 그들을 위해 정책상품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정당들로 구성되는데, 이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즉 소비자가 원하는 정책상품들이 제때에 제대로 공급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당의 자유’ 보장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시장에선 특히 신생 정당들의 시장진입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문제다. 정치시장에선 새로운 수요가 끊임없이 창출된다. 기존 공급자들이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땐, 즉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땐, 새 공급자들이 나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여 장기적으론 결국 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핵심적인 진입 장벽은 지역주의와 결합된 소선거구일위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다. 이 제도는 지역 유권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표를 사표(死票)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1등이 될 만한 후보에게만 표를 던지는 경향을 갖도록 한다. 그러니 지역기반이 취약하고 1등으로 당선될 만한 명망가가 부족하기 마련인 신생 정당들이 유력 정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역과 인물 자산이 튼실한 거대 정당 중심의 독과점적 정당체계의 지속이 당연시 된다. 이 기득권 체계를 깨고 민의 반영이 자유로운 정치시장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선 결국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현실에서 비례대표제의 강화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선거법 개정권자인 국회의원들의 대다수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거대 양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정당들은 정치시장의 자유화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들의 힘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주도하기엔 너무 약하다. 이 상황에서 중도 및 무당파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안철수 세력의 신당 창당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당중심론자인 최장집 교수의 합류로 그것은 더욱 분명해졌다. 안철수 세력이 20% 중후반대의 현 지지율을 그대로 유지하며 신당으로 나아간다면 그 자체가 다당제로의 재편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신당이 비례대표제의 개혁에 앞장서준다면 정치시장의 자유화는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민주당에 바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안철수 세력이나 신당을 대상으로 통합이나 단일화 요청은 삼가길 바란다. 그것은 모처럼 일고 있는 정치시장의 자유화 움직임에 역행하는 일이다. 둘째, 중도정당화론이나 우클릭 주장에 대해선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중도는 넓고 매력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중도나 합리적 보수 성향의 상당수 시민들이 그들의 지지를 새누리당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옮겨가는 최근 추세가 보여주듯, 중도보수는 안철수 신당의 영역이다. 민주당의 경쟁력은 전통적 지지계층이 그나마 가장 많이 몰려있는 중도진보와 그 왼쪽 편에 있다. 셋째, 안철수 신당과의 역할 분담 혹은 영역 구분 필요성을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민주당은 앞으로 그 신당과 함께 비례대표제 강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시장 자유화의 길이며,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그리고 진보정당들이 각기 유력정당으로서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3.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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