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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인문공동체와 가치동맹의 거리: 한중 정상회담에 부치는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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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14 16:26 조회23,4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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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공동체와 가치동맹의 거리: 한중 정상회담에 부치는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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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 서남포럼 운영위원)

 

 

중국과 한국이 인문공동체를 만든다?! 지난 5월 31일 중국 연변대학의 초청을 받아 ‘동아시아 공동체의 길’이란 주제로 강연하러 갔다가 그곳 학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중국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알려주면서 내게 그에 대한 상세한 소식을 듣고자 했다. 동아시아공동체란 용어야 친숙하지만 한중간의 ‘인문공동체’란 말은 생소해 중국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4월 24일 양국의 외교부 수장이 베이징에서 만나 회담한 내용을 현지 TV방송국이 보도하면서 그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양국인의 우호와 이해를 강화하기 위해 ‘인문공동체’를 건설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자고 했으며, 이 구상은 애초 한국 정부가 지난 연말에 제기한 것인데 중국 정부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어서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의 해설이 곁들여졌다. 그는 인문공동체 개념이 양국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표현으로 함의가 풍부하다고 평가하면서, 지금까지 양국 관계가 경제무역의 발전에 치중한 이익공동체였는데 앞으로 민간 차원의 지지에 기초해 양국 관계를 폭넓게 발전시켜나가는 데 이 개념이 유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로 돌아와 위의 보도에서 인용된 동아일보 2월 22일자 기사를 비롯한 관련 기사를 조사해보았다. 그 구상이 제기된 경위와 의미가 대충 손에 잡혔다.

지난해 말 외교통상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할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인문동맹’의 개념을 검토한 모양이다. 한미 관계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임을 감안해, 한중 관계도 장기적으로 다른 측면의 동맹 관계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제안이다. 한국과 중국이 정치, 경제 및 사회체제에서는 서로 다르지만 오랜 역사와 문화, 철학을 공유해 온 만큼 인문 분야에서 같은 점이 많다는 게 그 근거가 되었다. 이 개념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즉각 반기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주의를 끄는 사실은, 우리 외교부가 인수위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는 인문동맹 대신 ‘인문 교류 강화’라는 표현으로 일단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군사적 개념이 포함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동맹’이란 단어의 민감성 때문이다. 우리 정부 안에서는 ‘인문연대’ ‘인문공동체’ 같은 표현도 대안으로 거론되었다.

그같은 경위를 거쳐 지난 4월의 한중 외교부 수장회의에서 중국 외교부장이 적극 지지한다는 발언이 나오기에 이른 것이 바로 ‘인문공동체’ 구상이다. 나는 그것을 주변정세를 두루 고려한 창의적인 제안으로 여겨 원칙적으로 환영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내세운 ‘한-미 가치동맹’ 주장이 초래한 논란이 떠올라서이다. 가치동맹(Coalition of the Willing)이란 용어 자체가 미국 부시정부가 미국적 가치에 동조하고 협력하는 국가들은 우방이자 문명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에 반하는 국가와 단체들은 야만 세력이자 적으로 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통용된 것이잖은가.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 가치동맹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표방하지만, 이를 반대하거나 이와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세력 또는 국가들에 대항한 배타성을 띠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그 당시부터 제기된 바 있다. 더욱이 정부가 의도하든 않든 그것이 중국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심을 살 위험이 컸다. 그런 까닭에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외교전략은, 한미간의 ‘가치동맹’이 아니라 호혜적이며 균형이 잡힌 양국관계를 지향하면서 그것을 중국 등 주변 국가와의 다자간 협력과 잘 조화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문공동체 구상이 한중간의 공론의 장에 오른 것을 반기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이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가 처음 고려한 용어인 ‘인문동맹’이 ‘인문연대’ 또는 ‘인문공동체’로 바뀐 데서 엿볼 수 있듯이 그에 대한 충분히 숙성된 입장이 없는 듯해 우려된다. ‘인문’을 단순히 외교적 수사로 여긴다면 모를까 진지하게 다루기로 든다면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님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유교·한자 등 공통의 문명 유산을 바탕으로 인적·문화적 교류를 늘림으로써 유대감과 상호 이해를 증진한다는 복안을 우리 정부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오늘의 한국에서 유교나 한자가 과연 살아있는 문화자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양국인이 공유하는 유대의 근간이 되기는 힘들 터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비대칭적인 한중관계의 오랜 역사를 돌아볼 때 유교나 한자 같은 (또는 다른 어떤 공통의) 문명 유산을 한국인이 슬기롭게 활용할 문화적 역량을 갖추지 못할 때 중국의 문화대국 논리에 흡인당할 위험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이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문화를 역사적으로 지켜왔고 지금 그것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동시에, 인문을 단순히 문명 유산에 한정된 것으로 간주하고, 인문공동체를 통해 한중간 정치·경제 사이의 괴리와 안보문제의 이견을 좁힐 수 있는 공공외교의 한 분야로 정부가 기대한다면 그다지 큰 실효가 없을 것이다. 인문(학)이란 사람다운 삶을 온전하게 살게 하는 지혜와 노력을 의미한다. 한국이, 그리고 중국이 오늘의 현실 속에서 좀 더 사람답게 사는 삶을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만, 그 노력의 성과로부터 인문공동체를 건설할 동력을 얻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상대방에게 저절로 끌리는 문화적·사회적 매력이 민간 차원의 연대의 진정한 기초임은 나날의 일상세계에서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곧 다가올 27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인문공동체란 의제가 얼마나 비중있게 다뤄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정상이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인문적 소양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를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준비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인문공동체는 말 그대로 사람다운 삶을 온전하게 살게 하는 지혜와 노력을 함께 하는 인격적 유대를 의미한다. 그런데 함께 하는 삶(즉 共生)은 고통을 함께 나누고(곧 共苦) 그 고통 해소에 함께 노력할 때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

북핵실험과 역사·영토 분쟁으로 요동치는 동아시아 국면의 핵심현장이라 할 한반도는 올해로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한다. 분단된 한반도 주민의 누적된 고통을 해소하려는 지혜와 노력 없이 인문공동체는 이뤄질 수 없다. 수교 21주년을 맞아 갓 성인의 길로 들어간 한중관계가 역동적 관계로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서남포럼, 201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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