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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새로운 눈 ‘갑을(甲乙)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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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19 15:47 조회24,7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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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안경’, 즉 프레임 하나가 우리 사회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갑을(甲乙) 안경’이다. 이미 민주당은 발 빠르게 ‘을’을 위한 정당임을 표방했다.


원래 모든 안경은 빛의 일부를 차단하거나 초점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에 힘입어 우리는 흐릿한 사물을 명료하게 볼 수 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갑을’ 안경도 그런 역할을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진보 진영에서 즐겨 착용하고 전파해 온 ‘안경’은 수입산인 반(反)신자유주의 ‘안경’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핵심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민영화, 규제완화, 시장자유화, 개방화, 노동시장 유연화, 감세와 작은 정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로 규정했다.

2000년대 들어 철도, 발전소, 국공립병원 등에 대한 시장원리(소비자 선택권 보장, 경쟁 강화, 자율책임) 도입, 대우자동차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에서 벌어진 정리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에 대한 진보 진영의 극렬한 반발은 반신자유주의 프레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프레임이 제시한 가치·정책의 우선순위가 서민들의 생활상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실제 이 투쟁의 주력부대이자 수혜 세력은 대기업, 공기업 노조원인데, 이들은 대체로 대다수 서민보다 훨씬 적게 경쟁하고 하는 일에 비해서는 훨씬 높은 처우를 누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에 제기한 ‘공정사회론’과 야권이 2010년을 전후하여 제기한 ‘경제민주화론’은 재벌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와 경제력 집중을 주로 문제 삼았다. 동시에 그동안 대형 유통업체에 짓눌려 온 중소 상인들과 수요가 독점된 대기업 협력업체들의 고통과 불만을 전향적으로 받아 안았다. 진일보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갑을’ 담론은 여기서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실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공정사회와 경제민주화의 ‘안경’(프레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진짜 ‘갑’들-예컨대 국회의원, 양대 정당, 관료, 기자와 PD, 유력 언론과 방송사, 인터넷 포털(네이버와 다음), 학교 재단과 은행, 공기업 노조 등-의 위세와 횡포를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또 재벌 대기업뿐만 아니라 그동안 특정 영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던 남양유업과 CU 같은 기업들의 위세와 횡포도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았다. 요컨대 ‘갑을’ 안경이 좋은 것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거래 관계의 공정성, 건전성과 가치생산생태계 전반의 몰상식, 무원칙, 폭력성을 돌아보도록 했다는 점이다. 재벌 대기업과 국내외 금융자본 등 천상(天上)에 있는 존재만 문제 삼는 수입산 반신자유주의, 경제민주화 프레임과 달리 자기가 속한 조직과 자기 자신의 횡포도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뭔가를 구매(갈구)하고, 생산 판매하는 존재들은 누군가에게는 ‘갑’이고 누군가에게는 ‘을’이 된다. 힘과 정보의 차이가 큰 곳에서는 대체로 부당행위가 벌어진다.


‘갑을’ 안경은 갑의 횡포에 대해 점잖게 충고하는 교수들에게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시간강사, 석·박사과정 학생, 학부모들에 대한 횡포도 지적한다. 정의, 공의, 공공을 부르짖는 언론사, 교회, 사찰, 공무원들의 약자에 대한 횡포와 위선도 문제 삼는다. 당연히 ‘을’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 새누리당과 유력한 정치지도자들의 몰상식, 무원칙과 위선도 문제 삼는다.

그런 점에서 ‘갑을’ 프레임은 우리가 그동안 많이 들었던 민주화, 자유화, 선진화, 공정사회보다 훨씬 강력한 개혁적인 가치가 아닐까 한다. 나는 모처럼 등장한 순 국산 ‘갑을’ 프레임이 정말 반갑다. 이것의 부메랑 효과가 우리 사회 전반에 파급돼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바란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닷컴, 201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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