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더 긴 노동을 위한 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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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7-22 16:22 조회27,2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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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안 되는 일 두 가지가, 하나는 잠든 아이 깨우는 일이고, 또 하나는 깨서 놀겠다는 아이 재우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돌봐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 맞춰 집을 나서려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똥 싸는 아이 때문에 출근 시간에 늦는 정도는 별일 축에도 들지 못함을 알 것이다. 순간 화도 나지만, 사실 문제는 자신들의 시간표와 생활 리듬에 아이를 끼워 맞추려는 어른의 조급함이지 아이 잘못은 아니다. 고역으로 말하자면 잠도 깨기 전에 어린이집이건 어디건 나갈 채비를 해야 하고, 형편 따라 아무 데서나 잠을 청해야 하는 아이 쪽이 더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서울시의 국공립 어린이집이 자정까지 문을 열고, 나아가 24시간 보육시설을 확장하리라는 소식을 그저 반길 수만은 없다.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하는 부모들의 사정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직장 일은 끝날 생각을 않는데 아이 찾을 시간이 다가올 때의 초조함을 생각하면, 어린이집이 조금만 더 늦게까지 열었으면 하는 수요가 상당할 것이고, 서울시의 정책은 이러한 요구에 따른 것일 터이다.
그런데 보육 시간을 연장하는 게 과연 이들 맞벌이 부부들의 삶을 수월하게 해줄까? 다소 그런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정까지 아이를 맡겨야 하는 사정의 가정이라면,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플 때, 또 밤까지 어린이집 있는 것은 싫다며 울며 버틸 때, 혹은 어린이집 선생님 사정으로 갑자기 오늘은 야간 보육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가 어른들의 형편 따라서 24시간 아무 때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넣고 뺄 수 있는 현금이 아닌 다음에야, 차라리 주중 내내 맡기고 주말에 한 번씩 데려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정 넘어 데리고 들어온 아이가 밤새 앓기라도 하는 일을 첫아이 때 몇 번 겪고 나면, 결국 둘째라도 낳게 되었을 때의 선택은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기 십상이고, 아마도 애초에 둘째를 포기할 집도 여럿일 것이다. 그러니 보육 시간 연장을 두고 아동의 권리가 너무 무시되고 있다, 지나치게 어른 중심의 사고라고들 비판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이는 아동은 물론이요, 어른들에게도 역시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라고 곱씹게 만들 가능성이 더 큰 정책이다. 더구나 보육 시간 연장을 위해서 자정까지 일해야 할 보육교사들과 그 아이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사실 어떤 정책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악순환 끝에 모두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드물지 않다. 일이 늦게 끝나니 마트도 늦게까지 열어야 되고, 약국이나 병원도 늦게까지 열어야 하며, 여기에 학교까지 대통령 공약대로 밤 10시까지 돌봄교실을 연장까지 한다면, 이 사람들이 다 늦게까지 일하니 결국 어린이집도 늦게까지 열어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니까, 시민이 원하니까 당장의 필요에 따라서 서비스를 확대하고 연장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아이는 어디엔가 맡겨두고 모두가 늦게까지 일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노동을 길게 만들고 삶의 리듬과 상관없이 24시간 깨어 있는 삶을 떠받치는 방향의 보육 정책은 저출산 기조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이렇게 고달파서야 누가 아이를 낳아 기르겠는가. 그런 면에서 야간 보육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보육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는 필요한 일이지만, 그 자체가 문제의 해결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을 해결하려다가 모두가 점점 사람다운 삶에서 멀어져가는 일을 거듭해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한겨레, 201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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