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이] 글쓰기 괴로움에 지친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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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8-02 15:24 조회35,5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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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몸과 마음에 잘 맞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쓰는 일로, 말하는 일의 상당부분을 대신한다. 쓰는 것이 더 안락하고 충족적인 사람들은 쓸 수 없을 때 자신의 존재의 밑바닥부터 금이 가는 불안을 경험한다. 심지어 쓰지 않는 자신에게 무거운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며 쓰지 않고는 타인과 세계를 거쳐 자기 자신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 '글 쓰는 인간'(Homo Writers)은 두 갈래 길 앞에서 늘 초조하고 위태롭다.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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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잊지 말기로 하자. 자주 과도한 열정과 콤플렉스로 존재 전체가 불콰해져 있는 그/녀가 이 모든 불가능성을 넘어서서 기어코, 쓰고 있다는 것을. 기어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 중에서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
낡은 책상, 손때 묻은 노트 혹은 컴퓨터,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 문장, 식어 버린 커피잔, 창밖으로 부옇게 밝아오는 아침…….
이 익숙한 글쓰기의 풍경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글쓰기의 괴로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한없는 수고, 작가의 삶, 걸작의 탄생, 무명작가의 절망 등.
당신이 상상한 저 고군분투의 고독한 글쓰기의 풍경 속 글의 장르는 아마도 시나 소설일 것입니다. 에세이나 편지일 수도 있습니다. 드물게는 논문이나 신문기사일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이것 한 가지, 평론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글쓰기는 고독한 글쓰기의 좀 더 고독한 외곽에서 느릿느릿 자신의 길을 갑니다. 평론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겹겹의 고독'은 어떤 글쓰기만이 아닌 모든 글쓰기의 공통의 운명이겠습니다. 직업이 삶의 질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듯, 장르가 글쓰기의 위계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삶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듯, 글 앞에서 모든 쓰는 자는 평등합니다. 글쓰기 앞에서 겪는 번민과 막막함에는 세계적인 대작을 쓰는 작가와 일기를 쓰는 어린아이 사이에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글이든 글을 한 번이라도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글쓰기의 괴로움과 콤플렉스로 우울해져본 적이 있는 사람은 더욱 잘 알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문장 한 줄을 쓰는 데도 자신의 전 존재를 일으켜 세우는 안간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든 글쓰기는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모든 '쓰는 자'도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타인을 향해 두려움을 떨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글쓰기'는 '살아가기'의 다른 이름입니다.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김수이 올림
김수이 문학평론가
(노컷뉴스, 2013. 6. 18.)
※원문은 한국도서관협회 문학나눔의 행복한 문학편지 (http://letter.for-munhak.or.kr)에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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