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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통상임금과 연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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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19 17:19 조회25,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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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낙수효과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만큼 뚜렷하게 인지되지 않지만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낙수효과 또한 사라졌다. 1990년대 중반까지 울산에서 골리앗 크레인에 오른 대기업 노동자들의 투쟁 성과는 전체 노동자들에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지금 크레인이나 철탑에 오르는 이들은 비정규직, 특수직 혹은 해고 노동자들이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다. 외려 진보정당-민주노총-금속연맹-대기업 노조라는 진보진영의 핵심 조직 연쇄는 전체 노동자 관점에서 보면 이제 족쇄 같은 것이 되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야기한 통상임금 논란 때문에 이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품고 싶은 일이 생겼다. 대통령이 방미 중에 지엠(GM) 회장의 ‘청탁’에 ‘흔쾌히’ 응한 탓에 통상임금에 대해 오랜 시간을 거쳐 조금씩 형성돼온 사회적 협의와 합의의 틀이 크게 흔들렸다. 이 문제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는 대체로 밀리면 안 된다는 입장이 우세한 것 같다. 하지만 외국 자본에 국내 대자본은 물론 중소자본까지도 이해가 일치하고, 거기에 대통령의 의지와 그것을 받드는 국가 관료 조직이 결합한 상황에서 정규직 대기업 노조의 힘만으로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지켜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대담한 기획이 없다면, 소수인데다 대중적 신망마저 신통치 않은 야당의 몇몇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이나 기업별 노조의 소송을 통해 문제가 잘 풀려나가기 쉽지 않다. 오히려 가능성은 널리 논의되지 않고 있지만 은수미 의원이 <경향신문> 인터뷰(5월29일치)에서 밝힌 제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통상임금은 미래의 임금뿐 아니라 과거의 임금과도 관련된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초과노동수당 등에서 재산정 사유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각종 미지급금이 형성된다. 법원은 그 가운데 지난 3년치를 노동자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급분 임금이 얼마인지 논란이 분분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적어도 14조6000억원, 많게는 21조원 정도이다. 이와 관련해 은 의원은 “3년치 소급 임금의 일부를 노동계가 사회연대기금으로 만들어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을 돕는 데 쓴다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이 참신한 제안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노동자를 단결시킨다. 대체휴일제가 논의되고 정년이 연장되어도 노동자들 모두가 기뻐하지 않는다. 그런 혜택이 비정규직에게는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확대로 인한 소급 임금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하지만 그 일부가 연대기금이 된다면, 그것은 현재 노동운동의 최대 약점인 노동자 간 연대를 강화할 것이다.


둘째, 앞서 지적한 정세에 더해 대기업 노조를 기득권 집단의 일부로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과 불리한 언론환경까지 염두에 둔다면 소급분 임금을 노동자들이 ‘깔끔하게’ 손에 넣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연대기금을 창설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연대기금은 정규직 노동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소급 임금의 30%만 잡아도 기금 액수는 4조5000억원 이상, 20%일 때도 3조원 이상이다. 노동자들이 이만한 기금을 마련할 기회가 또 있을까? 그 정도 기금이라면 다채로운 실험과 연대를 펼쳐갈 거대한 상상마당을 노동운동에 열어줄 것이며, 그것이 직면할 제약은 오직 진보진영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뿐일 것이다. 이런 기금의 형성은 노동운동의 낙수효과를 되살리는 동시에 노동운동이 크게 전진할 수 있는 황홀한 기회인 셈이다. 그래서 진보정당-민주노총-금속연맹-대기업 노조라는 조직 연쇄에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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