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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운] 4·3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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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21 15:17 조회35,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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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이 고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에 12만 관객이라는, 독립영화로서는 쉽지 않은 기록을 올리며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영화가 살아가며 놓치기 쉬운, 혹은 피하고 싶은 진실을 색다른 시선으로 포착하는 데 적절한 장르라 할 때, 4·3이 독립영화로 우리에게 던져졌다는 사실은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최근 한국전쟁을 소재로 화려한 액션과 러브스토리를 감미한 영화들이 극장가의 성시를 이뤘고 5·18 또한 준블록버스터급 영화로 800만 관객을 동원했던 데 비하면, 이번 ‘지슬’의 바람엔 어딘가 긴장과 절제가 있다. 사람들은 ‘지슬’의 어디에 빠져드는 걸까. 먼저 많은 이들이 4·3을 모르거나 알아도 피상적으로 알 뿐이라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국토 최남단의 아름다운 섬에서 도대체 왜 3만이 넘는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40여년이나 침묵 속에 봉인되어야 했는지. 무지에 대한 죄의식 섞인 호기심이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영화 ‘지슬’엔 긴장과 절제 있어

하지만 영화 ‘지슬’은 정작 이런 의문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자욱한 뭉게구름과 몽환적 연기로 시작하여 죽은 자들에 올리는 ‘소지(燒紙)’로 끝날 때까지, 영화는 이들이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 감독은 ‘지슬’은 혼령들에 바치는 제사이며 진실의 규명은 역사가에게 맡기겠다며 물러서지만, 사실 이 영화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건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잠재적 진실의 압도성이다.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분명한 5·18과 달리 4·3은 복잡하다. 피해자들의 증언에서도 가해자는 군경, 서청, 산사람, 폭도, 밀고자, 자기 가족을 모함한 이웃사람 등으로 흩어져 있다. 영화 ‘지슬’은 이런 가해와 피해의 얽힌 사슬을 풀려고 애쓰기보다 어루만진다. “자네 같은 아들이 있다”는 순동의 어머니를 살육하는 서청단원에겐 “편히 가시오, 내 어머니도 빨갱이 손에 돌아갔소”라는 원한이 있다. 경찰 아버지 뒤에 숨을 수 있음에도 도피자의 대열을 택한 상표는 결국 토벌대를 앞세워 동굴로 돌아온다. 그런가하면 주민을 향해 차마 총을 쏘지 못해 고초를 당한 박일병은 ‘빨갱이 도살꾼’과 마약쟁이 김상사에게 강간당한 순덕의 총에 죽는다. 그리고 ‘밀고자’ 상표를 죽인 총은 마을사람을 구하고 동굴에 합류한 신병의 것이다. 이처럼 죽음을 둘러싼 역설과 아이러니의 행진은 매운 고추 연기로 자욱한 동굴 속에서 토벌대와 주민들이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을 쏘며 절규하는 장면에서 고조에 이른다.

수많은 개개의 죽음은 뭘 말하나

‘지슬’이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흩뜨려 역사의 진실을 회피한다는 비판도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모호함 속에 리얼리티가 있는 건 아닐까. 토벌대와 무장대, 좌익과 우익, 남한과 북한, 그 배후의 미국과 소련 등 냉전이 야기한 폭력의 구조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면, 그 구조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개개의 죽음을 어떻게 이름 붙일 것인가. 이북 고향에서 당한 어머니의 죽음에 서린 원한을 타향에서 누군가의 어머니를 죽임으로서 풀거나, 목숨이 경각에 놓일 때 순식간에 배신자가 되고, 선의로 다가오는 적에게 본능적으로 총을 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전쟁과 학살 현장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4·3평화기념관에는 이름 붙여질 날을 기다리는 백비(unnamed monument)가 있다. 비석에 이름이 없는 이유는 아직도 냉전논리와 이념대립이 상존하는 우리 사회에 4·3에 대한 객관적 규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규명이 이뤄진들, 3만여 명의 죽음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영화 ‘지슬’이 주는 먹먹한 여운 위로 차갑게 누워있는 백비가 어른거린다.

백지운 서울대 연구교수·통일평화연구원
(국민일보, 201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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