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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조지 W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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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24 15:41 조회33,3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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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것은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오바마가 무명의 지역 정치인에서 대통령으로 성장하기까지 8년 동안 미국을 지배한 것은 비이성적 애국주의였다. 미국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그의 당선은 미국 일방주의로부터 벗어날 기회가 왔음을 의미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중계된 시카고의 오바마 당선 축하 행사에서 나는 오랜만에 민주주의의 축제를 보는 듯했다. 흥분에 들뜬 군중들 뒤편에 서서 눈시울을 적시던 제시 잭슨 목사의 감격 어린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정권 교체란 언제나 환희와 기대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는 좀 특별한 것이었다. 잭슨 목사의 말대로 그의 당선은 마틴 루서 킹 이래 40여년에 걸친 흑인들의 고난과 투쟁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취임사부터가 공허한 수사의 나열로, 믿음이 덜 가는 내용이었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의 농장을 번성케 하고 깨끗한 물을 흐르게 하며 굶주린 몸과 허기진 마음에 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당신들과 나란히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또한 우리처럼 비교적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국경 밖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듣기 좋은 말임에 틀림없지만, 자국 내의 빈부 격차가 얼마나 극심한지 알고 있는 대통령 당선자라면 ‘국경 안의 고통’을 해소할 방안부터 제시하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물론 오바마의 국내 정치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재직했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1900년부터 2007년까지의 미국의 살인과 자살 통계를 분석한 끝에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2012) 하나는 살인율과 자살률이 늘 동반 상승 또는 동반 하락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살인과 자살이 공화당 집권기에는 늘어나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줄어들며, 그 규모와 일관성이 우연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원의 자료에 근거한 길리건의 분석에서 살인 또는 자살의 증감이 사회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한데, 물론 오바마 시대의 통계는 나오지 않았다.


오바마는 취임사에서 또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오래된 우방들은 물론이고 과거의 적국들과도 함께 손을 맞잡아 핵 위험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의 망령을 쫓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할 것입니다.” 핵 없는 세계에 관한 오바마의 선언이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준 것은 가소롭기는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쑥대밭이 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 문제의 해결에 진심으로 노력을 쏟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의 참혹한 죽음에서도 감지된다. 9·11 테러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러나 범죄의 주모자라 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재판 받을 권리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빈 라덴의 인권 박탈을 재가했고 그의 사살에 환호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에 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이다. 알다시피 1기 오바마의 한국 쪽 파트너는 이명박 정부였는데, 지난 4년간 양자의 대북 정책 기조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였다. 정치에서의 ‘전략적 무능’이나 전쟁에서의 ‘전략적 패배’가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이것은 말하자면 수사학적 속임수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과거의 적국들과도 함께 손을 맞잡아”라는 자신의 취임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부시 1기의 노골적인 적대보다 더 기만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다. 한반도 정책뿐만 아니라 세계 전략 전반에 걸쳐서도 오바마 정부는 닉슨이나 레이건 같은 우파적 현실주의의 일관성을 결하고 있다. 말로는 중국의 해킹을 공격하면서 행동으로는 정보기관을 동원해 전세계의 전화 통화와 인터넷을 사찰하고 있었음이 폭로되었으니, 최근 인터넷신문 <허핑턴 포스트>가 부시와 오바마의 합성사진 밑에 ‘조지 W 오바마’라고 설명을 붙인 것은 실로 절묘한 풍자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한겨레, 201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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