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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증오와 공포의 정치 지속하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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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7-01 16:53 조회24,7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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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두 달여 앞둔 2012년 10월 초 정문헌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이) 사실이 아니면 정치생명을 걸겠다"면서 한 폭로 행위의 심리적,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씁쓸함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정 의원의 행동의 배후에는 정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략의 대전제는 노무현과 진보 세력은 친북, 종북, 매국, 역적질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우리 국민들은 그런 자들에게 대통령과 국회 과반 의석을 주기도 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불신과 공포다.



추측컨대 보수 세력과 그 지지층에 널리 퍼져 있는 이 황당한 생각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 하여금 종북 세력의 득세를 저지하기 위해, 국정원 요원의 애국심을 발휘하여 약간의 특별 활동(선거 개입)을 지시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남재준 국정원장으로 하여금 국가안보의 기둥 국정원을 지키기 위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행위를 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노전대통령을 부엉이 바위 절벽으로 몰아간, 검찰의 편파수사, 망신주기 수사의 뿌리도 여기서 발원한 것이 아닐까?



'진보=종북'이라는 어리석은 불신과 공포


문제는 정문헌, 원세훈, 남재준 등의 망동, 망언을 규탄, 단죄 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존재하는 한, 또 진보 일각에 조선로동당과 역사인식이 비슷한 존재들이 조금이라도 준동하는 한, 민주적 절차나 상식쯤은 가볍게 여기는 애국투사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도 있고, 특히 혹독한 경험을 하면 피해의식으로 인해 상대의 퇴행성, 위험성을 훨씬 확대해서 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유의 불신과 공포는 보수 세력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피해자였던 진보도 가지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선거부정에 대한 공포가 대표적이다. 한미FTA를 '제2의 을사보호조약'이라며 결사반대 투쟁하는데서 봤듯이,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주권을 미국에 팔아먹을 수도 있다는 황당한 의심도 한다.



우리나라 큰 선거는 불신, 증오, 공포의 휘발유에 불씨를 던질 방화범(확신범)을 끊임없이 양산한다. 비전과 실력과 도덕성 등이 부실한 정치 세력은 더 더욱 상대에 대한 극단적 혐오와 우리 편의 폭발적 결집을 가능케하는 폭로 한방에 목멘다. 언론은 이런 '대량살상 방화 범죄'에 너무 관대하다.



정 의원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착각'(6월 26일 기자들에게 말했다)이라고 해명하면 대충 넘어갈 수 있다. 이러니 폭로 한방으로 '매국, 역적 무리들을 처단하자' 혹은 '제2의 4·19를 일으키자'는 전쟁판으로 바꾸고 싶은 충동이 넘쳐나지 않겠는가?모든 것은 분단, 전쟁, 독재 등으로 요약되는 불행한 역사의 산물이다. 쉽게 바꾸기 힘든 환경이라는 얘기다.



좌우에만 의존 않는 다수 유력정당이 경쟁하는 정치제도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증오와 공포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드는 정치제도다. 특히 분단체제와 맞물려 보수(새누리)-진보(민주) 양당의 적대적 의존과 정치 독과점을 뒷받침하는 선거제도다. 지금의 분단체제는 20세기 중반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좌파와 우파의 전쟁의 결과다. 좌우 양 진영이 엄청 진화했다고는 하지만, 철학, 가치, 과거사를 들추면 현재의 진보, 보수와 과거의 좌파, 우파의 유사성을 수두룩 찾아낼 수 있다.



실제 폭로의 본질은 이것이다. 그렇기에 미국, 영국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진보-보수 양당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증오와 공포의 정치를 지속하게 만드는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 지지율 10%가 넘는 유력한 정당 4~6개가 나와 생산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하는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 보수 간의 소모적 갈등으로 국민적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민족과 나라가 망하는 꼴을 지켜보아야 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내일신문, 2013.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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