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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힐링으로서의 혁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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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7-10 15:24 조회23,2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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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서울혁신학교조례가 통과되면서 혁신학교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아직 본회의 의결이 남았음에도, 시 교육청과 수구세력은 벌써부터 조례가 통과되더라도 무력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혁신학교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혁신학교를 지정·취소할 때 운영위와 협의하게 한 내용이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조례가 교육감 권한 침해인지 법률적으로 따져볼 순 있다. 갑갑한 것은 혁신학교를 두고 왜 이런 논란을 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혁신학교를 앞장서서 공격하는 대표적인 신문은 이태 전 ‘자본주의 4.0’ 기획에서 4.0 시대로 가는 관건은 교육이라며, 소득에 상관없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고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정부나 문용린 서울 교육감도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주장한다. 그런데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혁신교육을 화두로 던지면서 강조한 것 역시 행복한 배움을 통해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자기 가능성을 실현하는 교육이었다. 그러려면 창의성을 신장할 수 있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학교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그 신문이나 현 정부가 목표한 교육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지난 4년 동안 혁신학교들이 이런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결과 아파트 분양광고에서 주변의 혁신학교를 이점으로 내세울 정도로 학부모의 지지가 높아졌다. 물론 아직 무늬만 혁신학교인 곳도, 교장 등 관리직과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에 갈등이 있는 곳도 없진 않다. 특히 수십년 수직적 문화에 젖어 있던 관리자들이 혁신학교의 민주적 운영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혁신학교가 이런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가고 있음을 지난 몇 주 동안 여러 혁신학교 교장에서 학부모까지 두루 접촉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은 일은 혁신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학교에선 아이들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도 경쟁교육과 경쟁사회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적 유대감을 회복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경기도 양평의 조현초등학교에서 만난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아이는 2년 전 분당에서 이 학교로 전학 왔다. “아이는 활달했지만 분당 학교에선 친구가 없었다. 담임은 아이가 수업시간에 만화책만 보는데도 방치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겉돌고 나는 야단만 쳤다. 어느 날 아이를 또 야단치는데, 갑자기 아이 눈의 초점이 사라져버렸다. 멍한 모습의 아이를 본 순간, 아이를 잃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앞뒤 생각 않고 전학을 시켰다. 놀랍게도 전학 첫날부터 아이가 달라졌다. 전학 첫날 집으로 친구를 데려온 것이다. 친구들의 환영에 아이의 기도 다시 살아났다. 아이의 변화를 보면서 애 아빠도 변했다. 왕복 4시간 출퇴근에 바치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주말이면 아버지 합창반에 거르지 않고 나간다. 여기서 우리 가족은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발견했고, 한국 교육이 우리 가족에게 준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다.”


이런 사례는 이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전북혁신학교학부모협의회 윤성이 고문은 매해 학부모 캠프에서 사례 발표를 하다 보면 눈물바다가 되곤 한다고 전한다. 혁신학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긍심 있는 아이로 크는 것을 보면서, 부모들 역시 꼭 서열의 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아이들이 행복하리란 믿음을 갖게 됐다는 고백들이 줄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혁신교육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교사들이 지난 수십년간 우리 교육계를 납덩이처럼 짓눌러온 무기력을 떨쳐내고 자율적으로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면서 모두가 불행한 교육에서 모두가 행복한 교육으로 방향을 틀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도 일부의 문제점을 침소봉대해 모처럼 공교육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을 막으려는 것은, 항용 수구세력이 그러하듯이, 입으로는 이 나라와 교육을 걱정하는 체하지만 본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권태선 편집인
(한겨레, 2013.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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