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 정인보의 국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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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5-29 15:04 조회21,4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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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이럴 때일수록 남 탓하지 말고 우리가 잘해야 할 터인데, 그들이 이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기왕 지난 칼럼에서 3.1운동 얘길 꺼냈으니, 3.1절 노래에 대해서도 유의하고 싶다. “기미년 3월1일 정오/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이 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다/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선열(先烈)하 이 나라를 보소서/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박태현 곡) 행사시지만 품격이 높다. 특히 “先烈하 이 나라를 보소서”에선 소름이 돋을 정도다. 기나긴 해방투쟁에 목숨 바친 영령들께 비록 반쪽일망정 40여년 만에 출범한 새 나라를 봉헌하는 느낌의 현재가 절절히 살아있거니와, 바로 앞구의 ‘한강과 백두산’을 상기컨대 이 나라는 기실 통일정부를 품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나라’는 ‘기미년 3월1일 정오’를 기해 꿈결처럼 출현한 그 네이션(nation)의 육체적 현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위당 정인보 선생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노래의 작사자는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1893~1950)선생이다. 이제는 고색창연한 말이 되고 말았지만, 위당은 독립의 한뜻 아래 일생을 개결히 매무새한 고결한 애국자다. 경화사족(京華士族)의 일원임에도 그 간난한 시절들을 재야 선비로서 담담히 걸어가신 자취를 생각하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해방 후 독립의 바탕으로 될 국학에 잠심하던 위당은 우남(雩南)의 간곡한 요청으로 초대 감찰위원장(1948~49)에 취임한다. ‘공무원의 위법 또는 비위에 관한 조사와 징계 처분’을 관장한 감찰위원회의 수장이란 요즘으로 말하면 감사원장이다. 친일파들을 절차 없이 대거 쓴 이승만(李承晩) 정부로서는 위당이야말로 풍헌(風憲)을 주장(主掌)할 적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남의 용현(用賢)은 위당만이 아니다. 대쪽 같은 인권변호사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가 대법원장이요, 부통령에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국회의장에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그리고 농림부장관에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巖)이 포진한바, 초대 내각은 새 나라의 첫 면모로서 손색이 없다. 물론 이 출발은 우남의 독재가 강화하면서 곧 균열하니, 위당도 사세를 보아 사표를 던지고 말았던 바다.
그럼 이 노래는 언제 지은 것인가? 3.1절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1949.10.1)에 의거하여국경일로 처음 지정되었다. 아마도 이 어름에 청촉되었을 것인데, 정식으로 불리기는 다음해 첫 3.1절 기념식에서 공식적으로 봉정되었을 터다. 그러나 그 감격은 3개월 뒤 폭발한 6.25로 배신되고 와중에 납북된 위당은 그해를 넘기지 못한 채 서거하셨으니 오호 통재라. 이 노래는 감찰위원장에서 물러나 학인으로 돌아온 위당이 현실정치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때문에 더욱 남북 두 정부의 근원인 3.1운동을 회향(回向)의 자리로 높이 들어올린 최고의 국민시다. 위당은 전통적 선비의 현대적 이행을 대표하는 대학자의 면모가 큰 탓에 안타깝게도 시인의 풍모가 가리운 분이다. 주로 한시와 시조를 통해 당신의 사상과 감정을 노래한 탓도 있지만, 행사시를 간과하는 문단의 일반 관행도 한몫을 했다. 엉터리 행사시들의 범람 속에 위당의 국민시조차 함께 묻혔으니, 옥석(玉石)이 구분(俱焚)이다.
위당은 3.1절뿐 아니라 제헌절․광복절․개천절, 4대 국경일 노래를 모두 지으셨다. 3.1절 기념식을 치르고 6.25가 발발했으니, 나머지 세 노래는 듣지도 못하신 채 북에서 돌아가셨다. 말하자면 이 노래들은 선생이 민족에 남긴 유언이라고 해도 좋다. 하나같이 정성스럽고 하나같이 순순(醇醇)하지만, 3.1절 노래와 꼭 짝을 이루는 광복절 노래의 1절만 들어둔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기어히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이 날은 사십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윤용하 곡)” 해방 조국의 국민이 된 감격이 오롯한 회상의 원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한민국을 지금 “길이길이 지키”고 있는 것인가? 제헌절 노래 2절에 나오는 희한한 구절이 켕긴다. “바닷물 높다더냐 이제부터 쉬거라/여기서 저 소리 나니 평화 오리라”-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원(願)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어찌 그리 가혹했던가. 어느새 거친 물결이 다시 높아진 지금, 우리는 그 원점으로부터 얼마나 어긋졌는가, 이것부터 침중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재건의 시작일 것이다.
최원식 (인하대 인문학부 / 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포럼, 201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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