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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수원대 사태,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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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10 16:32 조회22,4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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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수협의회에 대한 과도한 탄압으로 인권문제까지 제기된 수원대학교에 다녀왔다. 수원지역 4개 대학의 교수협의회가 연대하여 공동으로 수원대 사태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수업시간 지키기를 철칙으로 삼고 있는 필자가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해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수원까지 가게 된 것은, 평소 사학문제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맡게 된 역할도 역할이지만 수원대 교수들이 겪고 있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원대 교수들은 이번 학기 초 26년 만에 교수협의회를 결성했지만 대학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교수들에 따르면 교수협의회 대표들에 대해 상시적인 사찰 등 감시가 이어졌고 일반 교수들에게 교수협의회 반대 성명서에 서명하게 하여 교수사회를 분열시키고자 하였다. 지성의 전당에서 이런 해괴한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 한국 사학의 현실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도 15년 전 유사한 일을 겪었다.



당시 재단의 눈에 벗어난 교수가 누가 보아도 부당한 재임용 탈락을 당해 사회문제가 되었음에도 캠퍼스에는 “재임용 탈락은 정당하다”는 내용의 교수 성명서가 도처에 나붙었다. 이는 대학 풍토가 극도로 억압적임을 말해주는 징표로 결국 참다못한 교수들의 반발로 분규가 터졌고 구성원들이 엄청난 고통을 치른 끝에 전횡을 휘두르던 재단이 퇴진함으로써 대학이 안정되었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당시에는 필자가 재직하던 대학만이 아니라 영남대·상지대·조선대·광운대·세종대·경기대·대구대 등 전국 수십개 대학에서 잇달아 분규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사립대학을 지배하던 족벌재단들이 대거 물러났다. 분규란 것이 교수나 학생 모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대학교육의 현장을 황폐하게 하는지 경험한 필자로서는 수원지역 교수들의 하소연과 결의를 들으면서도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그러나 오죽하면 교수들이 신분위협까지 감수하며 학교를 살리겠다고 나설까 하는 공감은 컸다.

사실 한국에서 대학의 75%를 차지하는 사학들이 대부분 족벌체제로 운영되면서 비리·부패·전횡 등을 저질러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것이 분규로 비화되어 사회문제가 되자 대학운영을 민주화하고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립학교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학재단과 결탁한 보수세력의 반발로 결국 사립학교법 개혁이 후퇴한 결과 사학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원대 사태는 한국 대학이 처해 있는 위기, 나아가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필자의 대학을 비롯하여 과거 문제를 일으키고 퇴출된 옛 족벌재단들이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모두 복귀한 것이다. 이것은 대학에서 다시 족벌과 세습이라는 전근대적인 지배구조가 복원되고 있음을 말해주며, 대학을 옥죄는 이 구조가 굳어질수록 대학이 또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말해준다. 수원대 사태가 보수정권 10년의 의미를 심문하는 한 징후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 봉건유습이 아직도 한국 대학을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보수적인 정권에 의해 비호받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부가 대학의 구조조정과 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이 같은 족벌구조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완화하지 않고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억압적 실상이 알려진 바로 그 수원대가 불과 2년 전 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들에 의해 교수연구년을 자진 반납한 개혁의 모범사례로 꼽혀 상찬되었다는 것은 무늬뿐인 개혁의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현 정부는 보수정권임에도 전 정권과의 일정한 차별성을 부각시키고자 해왔는데, 그것이 말뿐인지 아니면 내실을 가지는지 가늠할 척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학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라고 할 것이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경향신문, 2013.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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