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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운] 10대 유행어로 본 중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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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6-21 13:14 조회28,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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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푸샤이’ 되고픈 ‘댜오쓰’ 넘치고 황당할 땐 ‘원방,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인터넷 문화가 활발한 곳이 중국이다. 공식 언로(言路)가 제한된 만큼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삶의 애환을 토로한다. 2012년에도 수많은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언론 매체마다 기준별로 선별한 유행어도 다양하다.

2012년 최고의 유행어는 단연 ‘댜오쓰(絲)’다. ‘돈 없고 못생기고 전망 없는 싱글남’을 뜻하는 이 말의 출처는 축구선수 리이(李毅)의 블로그다. 거친 말 잘 하기로 유명한 리이는 자기 블로그에 축구뿐 아니라 잡다한 변 잡기에 대한 감상을 올리곤 했다. ‘댜오쓰’는 자기 신세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는데 게시판을 방문한 팬들이 앞다투어 자기들을 ‘댜오쓰’라 칭하면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심지어 ‘댜오쓰 문화’라는 말까지 생겼다. 타고난 배경이 없으면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자학과 허탈의 심리가 엿보인다.

‘댜오쓰’와 상반되는 ‘가오푸샤이(高富帥)’ 역시 2012년을 대표하는 유행어다.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 가오푸샤이가 되기 위해서는 1m85㎝의 키와 잘생긴 얼굴, 그리고 고위 공무원이거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쯤 되는 부모가 있어야 한다. 한국 TV드라마 남자 주인공들이 중국 여성들의 선망 대상이 되면서 ‘가오푸샤이 신화’가 시작됐다. 이런 가오푸샤이와 사귀거나 결혼하는 여자들을 ‘바이푸메이(白富美)’라 한다. 백옥 피부에 돈 많은 미녀들로 ‘댜오쓰’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여자들이다. 재력이든 외모든 타고나지 않고 노력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는 이 시대 중국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풍자적으로 표현된 말들이다.


백옥 피부에 돈 많은 미녀 ‘바이푸메이’

유행어 ‘행복하십니까?’도 유사한 맥락에서 나왔다. 중국중앙TV(CC-TV)가 만든 프로그램 ‘기층 백성의 소리를 찾아(走基層百姓心聲)’가 지난해 10월 국경절 당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원래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자는 계몽적 의도에서 기획됐지만 생각지 못한 기상천외한 답변들이 속출하면서 의외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중 압권이 “난 정가요(我姓鄭)”다. 중국어로 ‘당신은 행복하십니까’에 해당하는 ‘니싱푸마(幸福?)’는 ‘당신은 성이 복씨입니까(姓福)’와 음(音)이 같다. 사정은 이렇다. 칭추(徐)현 어느 마을에 간 기자가 한 남자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처음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자기는 농민공이니 묻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기자가 좀처럼 놔주질 않자 “난 정가요” 하고는 가버리는 장면이 생방송에 그대로 방영된 것이다. 그 외에도 “그런 질문 하려거든 저리 가요” “인터뷰 안 하면 행복하겠소” “귀가 먹어서 안 들려요” 같은 대답들이 시청자들의 폭소와 함께 애잔한 공감을 얻었다.

비슷한 것이 ‘욕해도 돼요?(我能說話?)’다. 자싱(嘉興)방송국 기자가 유가 폭등에 대해 한 시민에게 의견을 물었다. 화난 표정의 시민이 카메라를 향해 “욕해도 돼요? 안 되면 할 말 없고” 하고는 가버렸다. 세상에대해 화가 날 대로 나서 욕 빼곤 할 말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 말은 회사원 버전, 학생 버전, 신랑 버전, 아들 버전 등으로 확대됐다.


세상에 화난 이들 “욕해도 돼요?”

싸이 영향으로 ‘~스타일’ 대유행

‘긍정의 힘’은 시진핑도 종종 인용


TV 프로그램에 나와 크게 히트한 유행어로 ‘원방,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를 빼놓을 수 없다. 측천무후 시대를 배경으로한 역사추리극 ‘신탐적인걸(神探狄仁杰)’을 보면 주인공 적인걸은 풀기 힘든 사건을 만날 때면 늘 조수인 이원방(李元芳)에게 이렇게 묻는다. “원방, 자넨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면 대개 원방의 대답은 이렇다. “대인, 어딘가 수상합니다. 필시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있을 것입니다.” 2012년 이 말이 크게 유행한 데는 취안저우(泉洲)에서 벌어진 한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심하게 훼손된 채 고층건물에서 떨어진 여자 시신을 두고 경찰이 자살로 처리하자 인터넷에 어느 네티즌이 “원방,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라며 이를 조소했다. 이 말은 순식간에 퍼져 의심스러운 상황을 풍자하는 말로 쓰였다. 사회 불공평과 불공정에 대항할 힘이 없는 범부들이 생활속 곤혹에 맞닥뜨릴 때 이렇게 말한다. “원방,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한편 권위 있는 문예월간지 ‘야오원자오즈(咬文嚼字)’가 2012년 10대 유행어에서 ‘댜오쓰’를 비속어(는 남자의 성기를 뜻함)라며 뺀 반면 ‘가오푸샤이’를 5위로 올리자 곳곳에서 비난이 쇄도했다. 가뜩이나 가오푸샤이들에게 밀려 서러운 댜오쓰들이 언어권력에서도 눌렸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국경제시보(中國經濟時報)는 이런 제목의 글을 실었다. “‘야오원자오즈’의 10대 유행어, 원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싸잡아 욕먹을 때 ‘누워서도 총 맞네’

다른 매체들이 대부분 선별했지만 ‘야오원자오즈’가 뺀 또 다른 유행어가 ‘##스타일’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중국 대륙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하면서 각종 패러디가 속출했다. ‘강남스타일’이 크게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어느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키 작고 평범하게 생긴 싸이의 성공이 가오푸샤이, 바이푸메이 때문에 기 죽어 있던 범부들에게 희망을 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야오원자오즈’가 선별한 2012년의 유행어 1위는 ‘긍정의 힘(正能量)’이다. 원래 물리학 용어인 이 말은 영국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의 저서 'Rit it up' 의 중문 번역서 이름이다.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에너지가 사람의 능력을 촉진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도 이 말을 종종 썼다. 12월 광둥 시찰 때 “긍정의 힘을 발휘해 중단 없는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자”고 했고, 같은 달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중·미가 긍정의 힘을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유행어가 있다. ‘스트레스가 산처럼 크다’는 뜻의 ‘야리산다(壓力山大)’는 고대의 정복자 알렉산더(亞歷山大)와 발음이 같다. 주성치의 영화 ‘도학위룡(逃學威龍)’에 나온 “누워서도 총을 맞네(着也中槍)”는 아무 잘못없이 도매금으로 비난당할 때 쓰인다. 또한 전국 주요 대로를 대상으로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실태가 CC-TV에서 방영되자 ‘중국식 길 건너기(中國式過馬路)’라는 말이 한동안 인구에 회자됐다. 규범을무시하는 중국인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유사 유행어들이 ‘중국식 ##’라는 이름으로 생겨났다.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중앙일보, 201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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