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슈퍼 갑 노조’가 진보세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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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7-22 15:03 조회24,9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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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쯤 읽은 중국 소설의 한 장면이다.
중국에 마르크시즘이 수입되던 1920년대 초, 노동자 계급이야말로 중국 사회의 온갖 악덕을 해결할 수 있다는 유럽(러시아)산 이론이 퍼지면서, 당시 중국의 열혈 청년 및 대학생들은 그 위대한 사명을 이행할 노동자를 찾아 헤맸다고 한다. 그러다가 남루하고 비썩 마른 인력거꾼이 바로 그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도대체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 있는지 찾으려고 빙 둘러서서 동물원 호랑이 보듯이 살펴봤다나.
지금도 이 장면이 생각나는 것은 1920년대 중국의 열혈 청년 및 대학생과 1980년대 위장취업을 감행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운동권 청년 대학생이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도 보수와 진보 공히 미국산 및 유럽산 사회사상의 배경과 원리를 뜯어보지 않고 그 ‘썰’ 몇 가닥만 신봉하는 작태가 지속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한 중국의 열혈 청년들이 만든 중국 공산당은 계속 진화하여 10여 년 전(2002년 11월 제16차 당 대회)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을 채택했다. 중국 공산당은 ‘선진 사회 생산력, 선진적인 문화, 대다수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 생산력을 대표하려면 과학기술 및 시장에 대한 이해력과 생산조직에 대한 경영능력이 있어야 한다. 선진 문화를 대표하려면 넓은 안목, 깊은 전문성, 높은 도덕성(직업윤리)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영 기업가와 지식인들에게 당의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사실 ‘3개 대표론’은 국가를 책임지겠다는 정치집단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것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세계사적 사명’을 되뇌며 시장과 경쟁을 경원시하고, 군부독재 타도와 소유지배 관계의 혁파에 몰입하던 1980년대 열혈 청년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개념이 없었고, 지금도 이 땅에서 권력을 쥐겠다는 정치 집단에서 찾아보기 힘든 풍모이기 때문이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포함한 국민 전체를 책임진다는 개념은 보수에도, 진보에도 박약하다. 5000만 인구, 15세 이상 4200만 명, 경제활동인구 2600만 명, 임금근로자 1750만 명과 이들을 품고 있는 기업, 산업, 시장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취약하다.
보수는 북한과 친북좌파에 대하여, 또 진보는 재벌과 개방화 시장화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과잉이다. 그 때문인지 순진한 의도를 무참히 배신하는 정책적 ‘풍선 효과’나 ‘두더지 잡기’를 숱하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한규제 하한규제 가격규제 행위규제 몽둥이를 너무 자주 휘두른다.
대출이자가 높다고 아우성치면 고금리 금융기관을 무슨 흡혈귀처럼 몰아붙이고 대출금리 상한제를 들이민다. 비정규직이 넘친다고 아우성치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구조’를 보지 않고 사용 사유 제한이나 기간 제한을 들이민다. 정리해고 문제는 정리해고 요건 강화로, 청년일자리 문제는 청년고용 할당제로 대응한다. 특히 진보는 처지나 조건이 천차만별인 노동, 농민, 여성 등 소수자의 권리 및 이익을 강화하려 하고 국가(공무원)의 손에 더 많은 권능과 예산을 쥐여주려 한다. 미국의 루스벨트(뉴딜) 시대와 지금을 동일시하여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중시한다.
그런데 ‘2011년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 자료를 보면 한국 노조가 과연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가 맞는지, 양극화의 불길에 물을 끼얹는 존재인지 기름을 끼얹는 존재인지 헷갈리게 한다. 자료에 의하면 민간부문의 노조 조직률은 8.9%(조합원 145만9000명), 교원부문 18.8%, 공무원부문 59.0%다. 민간부문이 8.9%라도 되는 것은 삼성그룹과 포스코만 빼놓고 대기업은 거의 다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보의 핵심 동맹자인 노조는 대부분 슈퍼 갑이나 갑에 포진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1750만 노동자의 다양한 처지나 조건을 이해하고, 이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과 교섭력이 허용하면 자신들만의 ‘신의 직장’을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는 일과 누리는 처우의 균형 개념도, 산업 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개념도, 직무직능급 개념도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극심한 양극화 체제, 재벌 체제, 공무원이 최고 선망의 직업인 나라의 최대 수혜자이자 동반자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는 ‘병’과 ‘정’의 피폐와 억울함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슈퍼 갑’이나 ‘갑’의 과도한 권리, 이익을 노동자 계급이라며 옹호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로지 재벌과 빈약한 복지 책임론만 들먹이니 국가를 책임질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집권의 길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의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진짜 약자인 청년 세대와 다수 국민들의 기회와 희망을 어떻게 만들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럴듯한 비전을 제시하면 되지 않겠는가?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은 지금 한국 정치가 더 필요로 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닷컴, 201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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