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공공의료와 차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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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5-03 16:44 조회18,8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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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의 미래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의료 문제는 딱히 뾰족한 해법을 찾기도 어렵지만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니 당장 진주의료원의 폐업을 막는다고 솔직히 그걸로 한국의 공공의료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공공병원이 담당하는 역할 자체가 미미해서, 지방의료원 하나 닫는다고 큰 난리가 나지 않을 상황이 적나라한 우리 공공병원의 현주소다. 이러니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진주의료원 문제에 대해 의견이 크게 갈리는 형국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돈보다 생명이며 적자가 당연한 공공병원에서 적자는 폐업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사스 파동 때를 봐도 그렇고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민간의료기관이 담당하지 않는 역할을 공공병원이 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공공병원 폐쇄를 국민 건강권에 대한 직접적 침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의견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돈보다 생명이라지만 현실적으로 누적된 적자를 메우는 것이 국민의 세금이고 보면 무조건 적자도 상관없다는 논리는 무책임하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역할에 비해서 적자의 규모가 너무 크며, 비효율적이고 불친절한 공공병원은 공공이 아닌 직원들의 병원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모두 각각 중요한 지적들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공공병원만은 아니라는 지적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의 현실에서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구분은 매우 혼란스럽다. 효율성과 수익성 경쟁 속에서 공공병원들도 고가의 장비를 열심히 늘리고 장례식장을 개비하여 수익을 창출하고자 열심히 노력 중이다. 반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의료수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병원 역시 한국 공공의료의 한 축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의료수가가 낮아서 공공병원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면 민간 역시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딱히 더 공공적인 것 같지도 않은 공공병원은 적자를 보전해주면서 고용도 보장이 되는데, 민간은 민간이라는 이유로 알아서 살아남을 것을 요구받는데다가 살아남아도 욕을 먹으니 억울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게 된다.
그런데도 공공병원을 지켜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의료소외 계층의 진료도 중요하지만, 적정 진료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전체 의료의 성격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공병원을 더욱 확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공공병원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분명히 하고 의료적 기준과 함께 합리적 경영과 효율성, 친절 등에 대해서도 평가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좋은 지적이다.
그렇다면 공공의료가 적정 의료를 준수하면 충분한 것일까? 필자는 공공의료가 현재의 어려움을 이기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의학적으로 적정하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공공의료는 차별을 반대하는 의료이다. 사회의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해서 이용 자체가 차별로 느껴지는 의료, 능력만 있으면 다른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의료가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이 공공의료 자체로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 민간의료기관의 생각이 미치기 어려운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공공병원이 먼저 고민하고 관행을 개선해 나가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기껏 상정된 차별금지법안도 철회된 마당에 꿈이 너무 크다고? 그렇지만 그런 역할을 공공의료가 하지 않으면 어디서 하겠는가 말이다.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한겨레, 201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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